집에서야 어떻게든 냉장고 뒤져서 풀때기 찾아서 먹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밖이다.


직장에서. 각종 밥약속 술약속에서.

완전한 채식을 실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밥약속, 술약속은 안잡는다 치자.

직장에서는 어떻게 하나.

도시락을 싸들고 다녀야하나. 백프로 채식만을 내는 식당을 찾아야하나.

보통 밖에서 파는 음식의 경우에 '식사가 된다'는 조건 안에서 백프로 채식음식을 찾기는 쉽지 않다.

결국은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게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는 일도, 다먹고 숟가락 덜그럭덜그럭거리는 가방을 들고다니는 일도.



나는 어찌보면 다행이고 어찌보면 불행이다

다행인 것은 직장이 커피집이다보니 조리기구가 어느정도는 갖추어져있고 보관할 냉장고도 있다는 점이고

불행인 것은 식사를 위한 시간을 따로 낼 수 없고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르니 맘편히 밥을 못먹는다는 점이다


보통은 컵라면이나 삼각김밥으로 대충 때워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컵라면이나 삼각김밥.. 위에 말했듯 채식에 부합되는 요리는 아니다.



그리하야


나는 이번주 한주는 점심을 과감히 날리기로 했다.

아예 안먹을 순 없다. 배가 고파서.

배를 채울 수 있는 무언가로 허기를 죽이는 선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뭐 원래 컵라면이나 삼각김밥 우걱대는 평소의 점심식단도 영양학적으로는 엉망이었으니.


우유를 마실 수도 있겠으나 이번주는 채식을 실현하는 주간이므로

우유도 직업적으로 불가피한 메뉴 테이스팅 이외에는 입에 대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난 두부를 먹기로 했다

그냥 먹기는 힘드니까 갈아서.


지난주에 몇번 테스트 해 보았는데 콩국물이랑 똑같다. 너무도 당연한 소리겠지만.

차이가 있다면 좀 더 걸쭉하다는 것.




가게 앞에 두부를 파는 할머니가 계신다

두부는 1,000원이다


할머니는 두부 한판 팔아서 천 얼마 버신다고 들었다

하루종일 앉아계셔도 몇천원도 못버신다

그래도 소일거리 삼아 나와 계신다고 한다

젊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잘사는 나라에서 가난을 모르고 흥청망청 살지만,

지독한 가난을 겪으셨던 어르신들은 아직 한푼한푼이 귀한 돈이다



.....


쓸말이 없어서.... 별얘길 다 쓴다.

첫날이라 그렇다.


신체적 변화나 심경적 변화를 적기에는 이제 반나절 지났다.

아마 며칠 넘어가면 고통으로 뒤범벅된 절규와 발광으로 이곳이 가득 차겠지...



두부는 640그램 정도 되었다.


믹서기는 참고로 업소용 최고급 200만원 정도 하는 믹서기다

내가 이걸 살 때는 이게 우리나라에 단 한대밖에 없던거였다.

아는 커피머신업체에서 최고급 믹서기를 수입해 들어오기 위해 외국에서 갖고온 단 하나의 샘플을 내가 집어왔다.


이걸로 얼음을 갈면 얼음이 금가루로 변하고 그런 건 아니다

하루종일 수백잔을 갈아내도 고장이 안나니까 비싼거다

물론 수백잔 갈아낼 일은 당연히 없다... 원래 창업자들은 시작할때의 꿈만큼은 재벌을 바라보니까.

10만원짜리 살껄 ㅠㅠㅠㅠ







물은 300밀리를 넣었다

왜 300밀리를 넣었느냐

이유는 없다

200밀리는 뻑뻑할 것 같았고 400밀리는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물과 두부가 만났다

이런 뻘스러운 사진들로 공간을 채우는 것도 오래는 못갈거다

처음이라 의욕은 가득한데 감은 아직 못잡아서 이런거다

나 글 재밌게 잘 쓸 자신 있다

믿어라







갈았다

200만원짜리 믹서기가 그래도 쫌 더 잘 갈리는 건 맞을거다

영혼까지 갈아낼 기세로 갈아버린다

두부도 못가는 믹서기는 당연 없겠지만







물과 두부의 양을 합치면 약 1리터 정도

2리터짜리 피쳐의 반만큼 온다


뻑뻑한 정도는 대충..

오뚜기 스프 정도.

비주얼이나 뻑뻑함을 더 디테일하게 설명하자면,

흔들지 않고 윗쪽의 맑은 술만을 따라낸 막걸리병의 바닥에 깔린 마지막 꿀럭꿀럭 따라낸 찌꺼기 정도다.

색깔도 점도도 딱 그정도다.



세잔을 한번에 먹는건 불가능이다

한잔을 마시면 배가 부르다


여러 차례에 나눠서 마셔야 된다

맛은 나쁘지 않다

좋다

과연 언제까지 그럴진 모르겠지만


소금 좀 넣고 뜻뜻하게 먹으면 좋을 것 같다

자꾸 김치가 먹고싶어진다


채식주의 결심하고 첫 고비는 고기보다 김치다


물론 채식 김치도 시중에 판매되고, 직접 만들수도 있다

주 중에 미쳐서 시도할 수도 있지만

일주일짜리라서 김치없이 버틸 수 있을거다


그리 믿을란다




1일차 두번째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