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7일 화요일

채식 2일차



1일차 역경의 하루를 보냈다

그냥 풀만 먹고도 하루쯤 지내는 게 뭐가 어렵겠냐만

의식을 하고 있으려니 계속 생각이 나고 - 먹지말라 하면 더 먹고싶은 게 사람 심리다


하루 사이에 몸의 변화는, 당연한 소리지만 느낄 수 없었다

아마 몸의 변화를 느끼기에 이번 일주일 도전은 너무 짧은 기간이 아닐까

나중에 1개월짜리로 도전해 볼 생각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락토-비건'에 가까운 채식보다는 좀 더 완화된 채식을 하거나

매주 순차적으로 채식의 단계를 올려나가는 순으로 진행해 볼까 한다


2일차



아들이 채식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어머니께선 조미료와 액젓이 없는 물김치를 담궈주셨다



두둥!!


채식에 도전하는 이유가 이런 뻘스러운 블로그를 위해서인 것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맨날 고기에 환장하는 큰아들이 이번 기회에 좀 바람직한 식습관을 가질 기회가 될거라 생각하신 것 같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ㅠㅠㅠㅠㅠㅠ



하지만



가스레인지 위엔 낙지볶음이 있었다..................................





엄마는 과연 나의 아군인가 적군인가








전날 술도 꽤 먹었고

아 저 매콤한 낙지볶음을 빡 먹으면 속이 사아악 풀리며 기분이 아주 좋아질 것 같다


이틀차 아침부터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고난 고통 




난 저 냄비를 수도없이 열었다 닫았다 냄새를 맡았다 하며 괴로워했다

진짜 한개만 집어먹고 싶었다

정말 진심으로


내가 왜

왜 사서 이딴 블로그를 만들고 이딴 고생을 사서 하는가



사람들은 나에게 '그냥 고기 몰래 먹고 안먹은 척 하면 안되느냐' 라고 하지만

내가 채식을 한다고 누가 보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채식 그 과정에서 오는 고통이 바로 내가 이번 도전으로 얻고자 하는 목표물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블로그를 작성하여 모두가 보는 것이 내가 받는 보상이라면 보상인데

거짓을 말할 수 있나

없다.

견뎌야된다.





그래도 물김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맛이 아주 좋았다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침을 물김치와 몇가지의 풀때기들을 반찬으로 먹었고

반찬통에 물김치를 담아가서 점심도 물김치로 해결했다

가게에서 밥을 지어 먹는 건 굉장히 번거로우므로 오트밀 한컵을 물에 끓여서 죽을 만들어 먹었다



오랜 기간동안 이런식의 식단을 유지하면 영양공급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겠지

딱 일주일짜리니까 - 어차피 며칠만 있으면 끝나니까 귀찮음이 모든걸 압도한다

뭐 어차피 점심은 원래 라면이었는걸. 집에서의 끼니는 제대로 먹고 점심은 배고픔만 면하자는 주의라.


채식으로 인해, 인스턴트 식품 섭취가 줄어드니 아침저녁의 채식 구성을 더 다양화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더 건강해질 것 같다.



퇴근시간 즈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술약속이다

거절하고 집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다른 약속으로 인하여 두번쯤 보류한 술자리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친구가 요즘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지내는 터라 내가 좀 놀아줘야된다.



친구에게 말했다

한약을 먹는 중인데 이 약이 좀 특이해서 고기 종류는 아예 안되고 스님처럼 풀만 먹어야된다.. 라고.


사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블로그 때문에 채식한다고 말하기가 좀 그랬다.

이해해줄 리도 만무했다.

분명 헛짓거리 하지말라고 면박만 줄 게 분명했다.


친구는 말한다.

그럼 회 먹자. 회는 육식 아니잖아.


내가 이번 채식을 하면서 느낀게, 사람마다 육식의 기준이 정말 다르단 거다.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채식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제한적 육식의 단계가 여러가지인 것은 맞다.

네발 짐승만 안먹기, 털달린 육상 생물까지 안먹기, 생선까지 안먹기,

계란 등 알 종류까지 안먹기, 우유나 벌꿀등의 부산물까지 안먹기 등


하지만 오호 통제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육식의 '육' 을 고기 육(肉) 이 아닌 뭍 육(陸) 으로 이해하고 있다는거

육군의 육과 육식의 육이 같나

책 좀 읽으며 삽시다




친구에게 회 또한 먹으면 안된다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난관이 닥쳤다.

친구가 현재 피부병이 생겨서 밀가루 종류를 못먹는댄다. 실제로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고로 내가 든든하게 믿었던 파전집 카드가 무력화 되었다는 거.


파전집 아니면 갈곳이 없었다.

양주집 과일안주도 아니고, 세상 어디에 소주를 마시는데 풀만 버무려서 안주로 내어주는 집이 어디있으며

술집 기본안주로 나오는 시원한 냉국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동물성 조미료로부터 안전하단 보장도 없다.


친구는 횟집을 가자고 계속 떼를 썼다.

자긴 회를 먹을테니 나보고 쌈채소만 먹으랜다.


어제 깍두기에 이어, 오늘 또다시 살생의 욕구가 타오른다.

횟집가서 지만 회를 먹겠다고? 나보고 풀만 먹으라고?


백보 양보해서 그렇게 하자고 다짐하고 횟집을 갔다 치더라도.

내 앞에 회가 썰려져 나오면, 내가 알코올을 얼큰히 섭취한 상태라면, 난 백프로 이번 도전에 실패한다.

난 눈앞의 회를 보면서 견딜 정도로 자기 절제에 강한 타입이 절대 아니다.


친구에게 쌍욕을 퍼부은 뒤 끌고간 곳은, 전 종류를 기본으로 해서 여러 안주를 파는 보통의 술집.

나는 전을 시켜서 먹을테니, 너는 전 말고 밀가루 안들어간 안주 하나 시켜서 먹어라.


하지만

그 집의 전들은 모두 고기가 들어간 전들이었다.


그래서 메뉴판을 열심히 살펴보다 딱 하나 건진 안주는 두부김치.

난 두부만 먹는다. 넌 김치만 먹어라.



저기요 두부김치하고요 간장 좀 주세요.







주문을 하자마자 두부김치가 나왔다.




ㅅㅂ

장난하나........






기본안주랜다

이집은 기본안주가 두부김치다



...........................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내 입장에선 차라리 더 낫다







그리고

두부김치가 나왔다.




돼지고기를 넣고 볶은 김치..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번 맛봤으면 좋겠지만 저는 맛을 못봅니다.



두부를 간장에 찍어먹었다.

당연히 맛대가리 없다.




두부를 먹다보니 문제가 좀 있다.



이거.

이게 뭘 뜻하는가.


두부 한점을 반으로 잘랐을 때, 접시 바깥쪽의 두부는 괜찮다.

하지만 접시 안쪽의 두부는 모두 고기와 볶은 김치의 국물에 반신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두부를 계속 반동가리 내어서 바깥쪽의 두부만 먹었다.

바깥쪽의 두부가 모두 동이 났다



저기요 물잔 하나만 더 주세요






두부를 씻어 먹었다

너구리가 된 기분이다.




틈틈히 물을 바닥에 버리고 새로 물을 담아서 두부를 씻어냈다.

가게 바깥의 야외 테이블이라 가능했다.



두부에 배인 돼지고기 기름 내음이 살짝 났다.

물에 씻는다는 시도를 하였기에 이것은 실패로 규정짓지 않기로 했다.



두부에 배인 돼지고기 냄새가 살짝 역하단 느낌이 들었다.

타협적 판정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비육식 48시간에 가까워진 내 입맛의 변화 때문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이렇게 둘째날의 기괴한 도전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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