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장을 지나고 아파트단지들을 지나니 이제 본격적 시 외곽이다

허벅지에 극심한 피로통증이 온다

나는 한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손으로 파스를 다리에 치이이이이이익 뿌려대며 길을 재촉한다

일찍 출발한 것도 아니고, 아직 어디로 어떻게 갈지도 제대로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급하다 마음이.


비는 찔끔찔끔찔끔

바퀴가 매끈한데.....




대전 시 외곽의 이정표

오늘 평택까지 가는건 힘들 것 같고

천안까지 가자.

천안.......


천안..


아 암튼 천안까지 가야겠다.





대전을 벗어나자마자 고속도로 들어가고 나오는 몇개의 분기점이 있는데 위험했다.

절대 조심.


차가 갑자기 튀어나오고 들어간다.

그리고 오르막 구간이다.


근데 그걸 지나면 '대구 - 서울' 사이의 여정 중 가장 꿀내리막이 등장한다.

가장 안전하고 긴 내리막이다.








도로가로 자전거를 한참 타고 가다가 또 역방향에서 마주오는 자전거들을 만났다.

근데 이상하다.

어 저 자전거들은 왜 도로가를 달리지 않고 중앙선에 바짝 붙어서 도로 한복판으로 달리지 위험하게?

참 이해불가다. 자기네들 속도에 그리 자신이 있나...


근데..

그 자전거들이 왜인지 나를 좀 측은하게 비웃는 그런 표정이었다. 기분이 몹시 나빴다.



뭔가 좀 이상해서 자전거를 세우고 봤다.


도로 한복판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구축되어 있었다.

나는 그냥 중앙분리대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자전거 전용도로였다.


위 사진으로 올라가 왼쪽을 다시 보시라.

저기가 자전거 도로였다.



나는 자동차가 다 지나가길 기다린 뒤, 자전거를 들고 냉큼 중앙선으로 달려가서 높은 펜스를 넘어 자전거 도로로 들어갔다


오 마이 갓


두둥












이렇게나 안전하고 좋은 길이 있었는데 나는 도로가에 붙어서 아슬아슬하게 몇킬로나 달리고 있던거다

너무 억울했다



이 길은 너무 좋았다

안전 그 자체였다

그리고 세종시까지 계속 약내리막이었다


세종에서 대전까지 오는길은 반대로 꽤 힘들지도 모르겠다 - 기어없는 자전거라면.

경사를 느끼기도 힘들 정도의 약내리막이지만

체력이 방전상태라면 1도의 경사라도 절벽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거기다 내가봤을 때 거리가 10킬로는 거뜬히 넘을 거리라서 역방향에선 아마 꽤 힘들거다

아무리 육안으로 평지같아보이는 약한 오르막이라도 결국 표시안나게 사람을 쥐어짠다.

관성이 금방 사라지니 다리를 쉬지 못하니까.


나는 대전에서 세종으로 가는 방향이라 아주 편하게 왔다

이런 좋은 도로를 공짜로 타도 되나 싶을만큼. 너무 편하게 왔다

(하지만 불과 십 수분 뒤 나는 3박 4일 중 가장 짜증나는 사건을 겪고 또 몇시간 뒤 나는 3박 4일 중 가장 난감하고도 힘든 길에 접어들어 멘붕을 겪게 된다)


자전거 도로를 달려 세종으로 가는 길. 빗줄기가 굵어졌다.

이제 자전거 여행에서는 무시못할 수준의 비다.





자전거도로가 끝나고 옥천에서 헤어진 금강과 다시 조우했다

이 금강만 넘어가면 세종 정부청사다.





끼이이이이이이익!!!!!!!!!!!!!!!!!!



두리번대다 저 앞에 있는 인도턱을 진작에 발견못하고 있다가, 다행히 밟기 직전에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밟았다면 자전거가 튀어서 나뒹굴었을거다. 다행이다..



이게 보통의 날씨 보통의 노면같으면 해피엔딩인데, 비가 오고 있었다.

급브레이크에 멈춘 바퀴가 노면의 빗물에 밀리며 자전거가 슬라이딩하며 치이이이익 자빠졌다.


파워낙법 시전!!!!!!



역시 파워낙법으로 다친데가 없다.

휴...


몸과 손을 툭툭 털고, 자전거를 일으켜세우는데..

뚜둥.


땅에 나뒹구르고 있는 아이패드.


설마..


설마..........


설마.......................



조심스레 아이패드 커버를 열어보았다.











박살이 나 있었다.

아.....................



액정 수리비...

15만원.


한방에 날아갔다.

아..........................


'비도오니 다음 정차 때 아이패드를 거치대에서 빼서 가방에 넣어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말하는 '정차' 란 담배나 사진촬영의 이유로 자전거를 잠시 세우는 때인데, 진짜 '이번에 잠시 세우면 아이패드 가방에 넣어야겠다.' 생각했는데, 딱 그 직전에 이 사단이 벌어졌다.



하지만 어찌하리오. 일은 터졌는데.






가던 길 계속 간다. 마냥 바라본다고 깨진 유리가 붙지 않는다.






세종 정부청사가 보인다.

금강에서 정부청사 들어가는 길은 좀 위험했다.

공사차량들이 많이 다님.


길은 좁은데 길에 꽉 차는 트럭이 막 다닌다.


이 점 유의하시길. (아마 공사는 언젠간 끝나겠지만)





세종 정부청사 앞으로 오니 혼돈이 온다.

아이패드 유리는 거미줄이 쫘자자자자자자작 가 있고,

계속 지어지는 신도시다보니 도시의 건설속도를 지도의 갱신속도가 따라잡지 못하는 듯 하다. 그래서 인터넷지도와 실제의 길이 살짝 오차가 있어보인다.

그리고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단지들이다보니 그 길이 그 길 같다.

또한 가로세로 바둑판식으로 된 동네가 아니고, 정부청사 자체가 되게 희한하게 구불구불구불구불 연결되어 있다.


어디로 가야하지.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나는 공사중인 한 건물의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지도를 한참 봤다.

프린트한 종이 지도는 빗물에 번져 엉망이 되었고, 그마저도 찢어져서 걸레가 되어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비밀요원 K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동안 하소연 한 뒤, 담배를 몇대 피며 멍때리고 있다가 아 이대로 가다가는 오늘 천안에 도착하지 못한다...... 라는 생각에 다시 길을 재촉했다.




정부청사는 정말 장관이었다.

고래등만한 건물들 수십동이 모조리 공중터널로 연결되어 한 건물처럼 이동할 수 있었다.

그 건물들의 길이만 10킬로는 족히 넘겠더라. 




바로 이런 식으로 건물과 건물들이 다 연결되어 있었다

비 한방울 안맞고 건물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다. 진짜 도시 하나가 건물 안에 이룩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정말 장관 대 장관이었다.



야 어마어마하다

나는 감격했다


내가 좀 이런데 잘 감격한다.

엄청나게 큰 구조물을 보면 '인간의 힘이란 역시!!' 이러면서.

주로 큰 댐, 거대도시의 야경, 험한 산지에 지어진 건물 등등을 보며 그런 엑스터시(?)에 빠진다.


뭐 그래봤자 인간은 대자연 앞에 하찮은 존재일 뿐이지만.

그 하찮은 존재가 이렇게 대단한 걸 해내고 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감탄

또 감탄을 하다가 나는 길을 재촉한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아파트단지를 지나고, '과연 지도상에서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어디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가고 있다. 진짜 세종에서는 지도를 아무리 봐도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수가 없더라. 스마트폰의 GPS 기능이 있긴 하지만 그것의 오차도는 신뢰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으므로. 역시 지도를 확실히 읽는 방법밖에 없다.

지금 내 주변의 랜드마크급 건물 하나를 골라 검색어를 찍어서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럴만한 건물이 없었다. 아직 덜 만들어진 도시라 허허벌판에 가까웠으니.


어느 학교를 하나 발견하고 그 학교의 이름을 찍어보았다.


아.

갈림길이구나.


그렇다 나는 갈림길 앞이다.

하나 선택해야 한다.


현위치는 세종시 전체의 면적 중 거의 중심에서 살짝 남쪽.

목적지인 천안시는 세종시의 정북쪽보다 살짝 서쪽에 있는 북서쪽에 위치. 


1번 루트 :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세종시청 - 조치원 - 천안'

2번 루트 : 인터넷 어디에서도 정보를 찾을 수 없었던 ' 공주 북부 - 정안인터체인지 - 천안'


1번 루트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루트이므로 검증되어있다. 또한 도시권인 조치원을 경유하므로 일단 돌발상황에서 안전하다. 하지만 북동쪽 청주 방향으로 살짝 둘러서 가야한다. 다시말해 멀다.


2번 루트의 경우, 딱 북서쪽 방향으로 쭉 전진해서 정안인터체인지까지 간 후, 그곳에서 정 북쪽으로 올라가면 천안이 나오는 - 거리상의 낭비가 거의 없는 루트다. 다시말해 가깝다. 허나 인터넷 어디서도 정보를 얻을 수 없던 루트다. 로드뷰로 확인해봤지만 중간에 아무것도 없다. 그냥 산 사이로 난 국도다. 정보 전무, 노숙 불가, 그냥 무조건 즈려밟고 달려야 한다. 좀 모험.


시간은 애매했다. 현재 시각 오후 4시.


준비성이 투철한 나는 대구에서 출발하기 전에 일몰시간을 다 체크해 뒀었다.

안전한 시간은 7시다. 7시가 지나도 30분 정도는 더 갈수는 있지만 안전이 확실히 보장되는 밝기는 7시.

거기다 오늘은 비가 온다. 뭐 사실 비가 온다고 일몰이 더 빨리 오진 않는다. 그냥 하루종일 좀 더 어두침침한 게 전부다.

그렇지만 조심해야한다. 게다가 나는 어제 자전거 전조등을 분실했다.

비오고 전조등도 없다 그러므로 7시 이전 안전시간대에 무조건 가야한다.


남은 거리는 루트별로 대략 40킬로~50킬 정도 될 것 같고...

공주 - 정안 - 천안 루트로 가면 한 10킬로는 아낄 수 있고.

현재시간 4시. 남은시간 3시간. 40킬로는 어찌 가도 50킬로는 못간다.


그냥 오늘 천안공략을 포기하고 조치원에서 잘까..?

사실 그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었다.


근데 솔직히 천안에서 1박을 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천안이 좀 더 친숙한 도시이기도 했고. 평생 두번 갈 일은 없는 도시이긴 한데,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이유는 뭐.. 차차 설명하고.


답은 나왔다.



직진하면 조치원, 좌회전하면 공주다.

2번 루트다. 공주 - 정안IC - 천안


고고고고고



난 좌회전을 했다.






접어들자마자 오르막이 나왔다

언제 끝날지 모를 오르막이다


며칠간 자전거 여행에 이골이 난 터라 오르막도 그냥 쒝쒝쒝쒝 올라간다

길 건너편엔 은하수공원? 암튼 굉장히 예쁜 이름의 공원이 있었다.

보니 추모공원(납골당) 같던데.


아무튼 길을 따라 쭉 간다.


사실 여기서부턴 사진찍을 정신도 없었다.


오르막의 지평선 넘어서자 내리막이 나타나는데.


아... 고속도로 수준의 국도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인데, 아무것도 없다. 산 사이로 놓여진 국도다. 어디 중간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는 완벽히 산 사이의 도로.


아.. 뭔가 불안한데..... 되돌아갈까...

아니다 그냥 가자. 좀 가다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


......


안나온다.




비를 치덕치덕 맞아가며 오르막 내리막이 단조롭게 나오는 길을 계속해서 가고있다.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미 돌아가기에도 너무 많이 왔고, 도로는 양쪽 옆구리로 산을 끼고 가거나 아니면 빠져나갈 수 없는 고가도로 였다. 그야말로 산간 오지 수십킬로를 통과하여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무정차 국도.

만약 여기서 다친다거나 자전거가 망가지면 나는 진짜 그대로 절단나는거다.


언젠간 끝나겠지. 끝나겠지.


안끝난다.


양옆으론 끝없는 산.

눈앞으론 끝없는 도로.

뭐가 나올지 모르는게 더 두렵다.

이 길은 언제 끝날까.


양옆의 자동차는 쌩쌩 100킬로로 지나고 있다.


그 때였다.



눈앞에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괴물....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터널이다.


자동차를 타지않고 터널을 지나본 적이 있는가?

나는 서울 살 때, 상도터널을 한번 그렇게 걸어서 지난 적 있다.


매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갈곳이 없어 헤매며 사방을 후려치는 자동차의 풍압.

무엇보다 사람의 혼을 빼는 건 긴 튜브의 내벽을 끊임없이 때리는 그 굉음. 소음.

내 뒤를 따라오는 자동차들이 언제 돌진해올 지 모른다는, 하지만 피할곳은 없다는 공포.


사람의 혼을 완전히 빼놓는다.


하지만 상도터널은 그래도 사람이 걸어서 통과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 터널을 만든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지 않은 누군가가 이곳까지 올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터널 가장자리의 세뼘이나 될까 싶은 턱이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길이었다.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터널 벽에 바짝 붙어서 바들바들 떨며 걷기 시작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터널은 1km 정도 되더라. 보통 걸음으로도 걸어서 15분.

벌벌 떨며, 자전거를 앞세워 밀며 몇분을 걸었을까.

뒤로는 자동차들이 계속 휭휭거리며 날 지난다.

공교롭게도 터널은 C자 모양으로 휘어져 있었다. 뒤에서 오는 차들은 가까이 와서야 나를 발견하였는지 아님 뭐때문인지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클락션을 누르며 지나간다. 머리를 터뜨릴 것 같은 소음이 고막을 때린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곳을 걷는 게 불법은 아닐거다. 크기나 용도나 사람 걸으라고 만든 턱이었을테니. 아마 비상시일테고.

문제는 터널에서 겪을 대부분의 비상시는 터널의 자동차 운행이 완전 멈춰지겠지만, 난 비상시가 아닐 때에 그곳을 걷고 있었으니...


학창시절 주먹다짐, 무서운 선생님의 체벌, 군입대, 철없던 시절 돈벌이도 없이 막 긁었던 카드값 독촉 등등

살면서 공포스러운 적은 많았다.

하지만 내인생 30년 넘는 시간 중 그토록 강렬하게 공포스러운 적이 있었을까.

진짜 멘탈이 붕괴되었다.



터널이 끝났다.

나는 정말 기진맥진해서 기력이 완전 상실되었다.

덜덜덜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가야지.

난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도로가를 달린다.



2박 3일간 싸워왔던 더위였는데.

어느새 공포심과 비바람으로 온몸에 추위가 엄습하고 있다.

나는 가방에서 바람막이를 꺼내어 입었다. 하나 챙겨오길 백번 천번 잘했다.


기름값이 비싸다 했던가.

난 LPG 차를 한 1년 몰아본 게 전부라 휘발유 시세를 잘 모른다.

2000원치 넣으면 한 10킬로 가나? 뭐 모르겠다만.

아 내가 공포에 떨고있는 한시간 10킬로의 거리를 몇천원으로 갈 수 있다니.

너무 싼거 아닌가.


빗속에서 오돌오돌 떨며 가는데, 옆을 슁슁 지나는 자동차들...

자동차 천장 아래에서 안락하게 라디오로 노래를 들으며 갈 저들이 너무 부럽다.

정말 그때 느낀 심정이다.


길은 끝이 안난다.

지도상으로 보면 이대로 한두시간은 더 달려야 뭐가 나올 것 같다.


나는 이미 공포심에 완벽하게 굴복했다.

어딘가에서 가벼운 접촉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단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견인차 오면 좀 얻어타게.

아니 콜택시를 부를까. 나 지금 여기서 탈출할 수 있다면 오십만원 백만원이라도 낼 것 같다.

길가는 차를 잡아탈까. 근데 이 몰골에 이 짐에.. 불가능이겠지...


그리 오래 지난 것 같았지만, 세종에서 출발한 지 고작 한시간정도 되었다.

되돌아가면 한시간이면 다시 세종으로 간다.

앞으로 쭉 가면 뭐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


되돌아가는 쪽이 현명할 수도 있었을텐데.


터널..

터널은 두번다시 통과 못하겠다.




그냥 공포심에 매몰된 상태로 나는 계속 앞을 향해 갔다.



한참을 가자 양옆을 끝없이 둘러싸던 산이 잠깐 반짝 끝나고 도로는 교각 위를 달리고 있다.


유레카!!!

고가도로 아래로 다른 길이 하나 보인다.


이 고가도로의 높이가 7~8층 건물 높이는 족히 되어보이는데. 아무튼 저 까마득한 밑으로 다른 길이 하나 보인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이 길보단 낫겠지.

일단 이 길을 벗어나자!!!!


나는 고가도로가 끝나고 다시 산과 만나는 지점의 길도 아닌 비탈로 허겁지겁 자전거를 들쳐메고 내려갔다.

비에 진창이 되어있는 비탈을 헥헥대며 내려가서 교각 아래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물을 한모금 마시고 담배를 한대 빼물었다. 아 진짜.... 죽다 살았다.




숨을 돌리며 루트를 재설정해본다.


교각 아래를 십자로 교차하는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길일까.

아마 내 예상이 맞다면 이 길이 정안인터체인지 경유보다 더 최단거리이긴 하지만 너무 오지같아서 포기한 그 길 같은데...


거미줄처럼 금이 쩍쩍 간 아이패드를 이리저리 밀어본다.

신뢰할 수 없는 현위치지만, 다행히 너무 오지이다보니 다른 길이 없어서 내가 있는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내 예상이 맞았다.

이 길 따라 가면 천안으로 갈 수 있다!!!!


다행히 이 길은 차가 거의 없는 지방도로다. 주변에 농촌마을도 보이고.

아까같은 그 삭막한 길보다는 백배 나아보인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아직 갈길은 멀고 시간은 2시간도 채 안남았지만 그 지옥같은 길에서 빠져나온 것 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전의 쪽으로 가면 천안이 나온다.



도덕리가 아니라 덕학리였다

공주 덕학리





찌들대로 찌든 30대 초짜 모험가의 몰골이다


출발하자마자 시골마을이 하나 보였다

얼마나 반가운 '인간의 거주' 흔적인가


무인도를 탈출해 배를 발견한 사람의 심정이었다

나는 버스정류장에 앉아 감격의 셀카를 남기고 다시 길을 떠났다








길을 따라 쭉쭉 간다

이 길 따라 북쪽으로 쭉쭉 달리면 된다


처음엔 오르막이 좀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데 비에 젖은 아쿠아슈즈가 자꾸 돌아간다.

불편해서 신발을 계속 고쳐신는다. 그래도 행복했다.


뒤로 갈수록 길은 편해졌다

자동차도 없고, 길도 깔끔하게 뚫려있고 약한 내리막이 계속 지속된다.

그리고 양옆은 계속 시골마을.


나와서 담배피는 시골청년도 보이고.

슈퍼마켓도 한두개씩 보이고.

대학교 지방캠퍼스도 보이고

세종시 민속박물관인가? 뭔가? 그것도 보이고.

아 너무좋다. 이 기분. (그리고 아직도 기억하는 내 기억력!!!)




천안과 맞닿아있는 세종 전의

이제 다 와간다.




천안까지는 25킬로미터.

모든 거리는 시청 기준. 시청은 보통 시의 한복판.


그렇다면 일단 천안 들어가는데까진 한 10~15킬로 남았단거고.

도시 안까지 일단 어떻게 진입하면 그 뒤부터는 가로등 불빛과 인적에 기대어 야간주행도 가능하니.

일단 한시간 반, 두시간만 고생해 보자.





기억나는 건.

길 막바지에 무슨 화장품 공장이 하나 있었다.

그것이 길의 끝이었다.


드디어!

고가도로를 비상탈출해 뛰쳐내려간 덕학리에서부터 시작되어 정북쪽으로 1자로 쭉 올라오던 시골 지방도로가 끝났다.

전의역 근처까지 왔다.




지금껏 달려온 길의 이름이 근성길.

그야말로 근성있게 달려왔다.

이제 진짜 천안 다 왔다.





조금만 더 가면 천안이다




진짜 조금만 더 오니 일단 천안에 들어왔다

하지만 다시 세종으로 넘어가더라


천안에서 세종시 쪽으로 살짝 톡 튀어나온 지역 지나며 잠시 스쳐간 천안땅

거의 훼이크였다




소정리역 인근에 도착하여 비도 좀 더 피할겸 다시 고가도로 아래 굴다리에 자리잡았다

무슨놈의 고가도로 굴다리들이 이리 많았는지 ㅋㅋㅋ 비 피할곳은 많았다 ㅋㅋㅋㅋㅋㅋ

무조건 다리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일단 이제 천안이 코앞이니 잘곳을 정해야 한다.

자전거 때문에 찜질방에서 자는건 무리다.

또 하루종일 개고생하고 나면 찜질방 그 사람많은 곳에서 왁자지껄한 복판에서 자고싶은 마음따위 싹 사라진다

모텔 어딜 갈까.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미리 다운받아둔 어플이 있었다.

이름은 기억안난다만, 모텔 예약, 할인 어플이었다.


혼자가서 잠만 잘꺼니까 좋은모텔도 필요없고.

여기서부터 멀든 가깝든 여행 루트에서 크게만 안벗어나면 상관없으니 가격을 최우선으로 검색했다.

제일 싼 모텔이 2만5천원이었나.. 2만원이었나.. 3만원까진 안했던거 같은데.

아무튼 되게 싸게 모텔 하나 예약했다.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오아시스 모텔



공교롭네 ㅋㅋㅋㅋ



소정리역 인근에서 천안 들어가는 길은 굉장히 위험했다

아까의 그 터널 고가도로 버전이었다

어마어마한 트럭들이 갓길을 위협하고 있었다. 나는 고가도로 밑으로 떨어질까봐 무쟈게 쫄아서 또 벌벌떨며 엉금엉금.

뭐 이번 길은 길진 않았지만.




유관순 누나 조형물이 천안에 다시 온걸 반기고.

목천읍에 들어오니 역시 병천순대의 고장 천안, 순대국밥집들이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뭔가 확 번화가다 싶은데는 없고. 그래도 인적이 끊이지 않는게 어딘가.


씽씽 달리는데 옆에서 승용차 한대가 물웅덩이를 밟으며 구정물샤워를 시켜줬다

뭐 원래 쫄딱젖은 거지꼴이라 표시도 안났지만 그래도 기분 더럽드라

귓구녕까지 물이 다 들어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꿋꿋이 달렸다


도정리인가 뭔가 하는 동네 버스정류장에서 지도를 확인했다.

거기서부터 천안 시내버스가 빈벊

천안은 되게 좋았던 게, 동네 버스정류장에 도시 전체 지도가 다 그려져 있더라. 대략적 현위치랑.


그래서 모바일기기를 꺼내지 않아도 현위치를 파악하기 참 쉬웠다.


도정리에서 북쪽으로 쭉 올라와 큰 오르막 하나 넘어가니 시가지가 보인다

다 왔다.


내리막을 슬슬 내려오는데 좀 이상하다.

뒷브레이크가 고장났다.

잡아도 안먹힌다.

언제 고장났지?


아.....


일단 천안 시가지 들어오니 대충 길이 눈에 보인다.

예전에 천안 몇번 왔었고, 자동차 운전하며 돌아다닌 적도 있어서 길눈이 상상을 초월하는 나에게는 여전히 기억이 많이 남는다.



천안하고의 인연을 이제 풀어보자면.

한 5년~4년쯤 전에 천안 여성분이랑 한 1년 가까이 교제한 적이 있었다.

거의 대구에서 많이 봤었기에 천안에 간 적은 서너번 손에 꼽히지만 아무튼.

천안 그래서 영 낯선 도시는 아니다.


공교롭게도.

내가 머무를 숙소가 그 친구가 살던 동네인 천안 서북구 쌍용동이었고.


뭔 인연과 재회를 기대하고 간건 절대 아니다.

언젯적 인연을 지금와서 찾겠나.

제일 싼 모텔을 찾은 것 뿐이었다.


아무튼 모바일 기기들의 배터리가 거의 다 되어 꺼지기 일보직전이다.

이거 꺼지면 모텔 예약한거를 보여줄 수가 없다. 모바일쿠폰이라.

아 이제부턴 감으로 찾아갈 수 밖에 없다.


쌍용역만 찾아가자.


가다가 천안 남부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 하나가 날 막아선다.

고가도로 아래에 베드민턴장인가 테니스장인가 뭔가 하나 있던데. 거기 운동들어가려는 아저씨 붙잡고 쌍용동 가는길 물어서 방향을 잡았다.

고가도로 넘어가야겠네.


고가도로.

오늘 무쟈게 맞닥뜨린 고가도로 하나 또 넘어가야된다.


고가도로를 넘어가려고 자전거를 들쳐업고 구불구불 계단을 올라가는데 앞에 여학생 한명이 걸어올라간다.

진짜 주변에 인적도 하나도 없는 으슥한 곳이고, 날씨도 시간대도 그랬고 뭣보다 내 몰골도 그래서 앞에 가는 여학생이 괜히 불안해 할까봐 좀 천천히 거리를 두고 걸어올라갔다. 고가도로 올라가니 여학생이 사라졌다. 좌우양옆 갈곳없는 높은 고가도로였는데 귀신처럼 사라졌다. 묘하게. 헐..


교가도로 올라서니 저 멀리 아파트단지가 보인다.

저 아파트단지가 쌍용동일거다. 아마.


방향을 잡고 자전거를 타고 간다.

익숙한 동네가 나타났다.



예전에 왔던 그 동네네...






긴장 풀리니 배도 고프고

마침 잘됐다 방전된 모바일기기 배터리들도 내 몸뚱아리 에너지도 다들 충전해야겠어서 식당을 찾아 들어왔다


하루의 사투를 여실히 보여주는 쭈글쭈글한 손가죽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이건 그냥 정말 맛있더라

특히 모주.

죽여줬다 정말



에너지가 훅 충전되는 게 느껴진다

폰 배터리도 채웠고


난 다시 모텔 찾아서 간다






오아시스 모텔

나름 좋더라


쿠폰 보여주고 돈 지불하고 방 잡고 들어와서 일단 싹 씻고, 자전거 세차까지 끝냈다

찜질방에서 못자는 게 자전거 때문이 제일 크다.

보관이 힘들다,

그리고 오늘같은 날은 세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몸도 한번 푹 지지고 자전거 씻고 빨래까지 싹 끝났다.



3박 4일 중 오늘까지 3일이 지났다.

이제 내일 하루 남았다.


지긋지긋하던 여행이었는데 뭔가 아쉬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렇게 빨리 끝나는건가.....


인생에 잊지못할 며칠이 내일로 끝나는구나..








씻고 훌렁훌렁 벗고 방 사진 찍었다가, 혹시 내가 발견못하는 어딘가에 반사되는 내 벗은몸이 사진속에 숨어 있을까봐 새로 옷입고 사진 찍었다 ㅋㅋㅋㅋㅋㅋㅋ 뒷정리 깔끔하게 끝내놓으니 9시가 넘었더라.


모텔 앞 편의점에서 술과 안주 좀 사왔다.

하루를 무사히 끝낸 것을 자축해야지..





평소같으면 간에 기별도 안갈 양이지만.

오늘은 꽤 피곤했다 ㅋㅋㅋㅋㅋㅋ


티비에 나오는 장나라랑 장혁 나오는 드라마 좀 보다가 잠이 들었다.

명랑소녀 성공기 이후로 저 둘의 케미를 다시 보다니.

세월 참.. 여전히 잘났고 예쁜 그들을 보며 왜 나는 이렇게 늙었나.. 생각하다가, 그래도 이나이에 이렇게나 하지않나!!!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뭔가 쓸쓸하다 마음이



여행 3일차 끝!!!!!






절대적으로 조치원 경유해라

진심이다






여행 4일차 아침이 밝았다.


출발하려고 짐 챙기고, 씻고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다가 틀어둔 티비를 힐끔 보았는데.

김일중 아나운서가 나오는 전국방송 아침 프로그램이었다.


오. 마이. 갓.



몇년 전 만났다던 천안 그 여성분이 티비에 나오고 있었다.

뭐 해독주스인가 뭐시긴가 관련해서 길가는 사람들 붙잡고 하는 인터뷰였는데.

첨엔 아 목소리 비슷하네 어 되게 닮았네. 이러다가 보니까 동일인물이었다.



뭐 누구든 티비에 나올수도 있긴 하지만 내가 지금 있는 여기가 어딘가


천안만 오면 어떻게든 보긴 보는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신기했다

뭐 그랬다고


다시 자전거 타고 길 떠난다.



4일차 마지막 여행기에서 봅시다

언제 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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