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어


- 듀스 '우리는'






낯선 공간에서 깨어난 아침

혼란스럽다

온몸이 아프다


그렇지

나는 자전거를 타고 김천으로 왔다

그리고 술을 3차에 걸쳐 퍼먹고 아는 동생네 가게 와서 잤다



아...











숙취가 거의 없는 편이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쪼끔 있긴 있다 특히나 어제처럼 무지막지하게 운동을 한 뒤 또 무지막지하게 술을 들이부은 날은 당연히도.







오늘 내가 가야 할 예상 거리는 김천에서 영동, 옥천을 거쳐 대전까지 약 100킬로미터

한시간에 10킬로씩 간다 치면 10시간.


김천에서 영동 사이에는 구름도? 바람도? 아무튼 뭣도 쉬고 간다는 추풍령 고개가 있다.

구름도 바람도 쉬고 간다는데 나? 당연히 쉬고 가겠지.

어마어마한 오르막이 존재할거란 막연한 생각이 든다.


지도로 봐서 길은 알겠지만 오르막 내리막까지 지도로 하나하나 다 알아내기는 쉽지가 않다

아무튼 난. 오늘 추풍령을 넘어서 경상북도를 벗어나 충청도로 들어가는거다.








7시 40분이 좀 넘어서 일찌감치 출발했다 갈 길이 멀다







숙소에서 나서고 5분여만에 김천역 돌파

김천역에 개인적인 추억도 좀 있지만 추억팔이 하며 머무를 시간이 없다

사실 어제 김천에서 술퍼먹으며 추억세척 싹 끝냈음





김천역을 지나니 김천시장? 뭔 시장이 하나 나왔다.
전날 술도 꾸역꾸역 퍼넣은데다 아침 공복. 김천을 벗어나면 바로 시골길 예상.
그리고 김천 벗어나자마자 추풍령 고개를 타야하고.
에너지 보충을 해야한다. 


시원하게 돼지국밥 한그릇 말아먹고 출발하자

하고 시장을 둘러보았다
예전에 김천에서 돼지국밥을 굉장히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났기에
김천의 시장 뒤지다보면 돼지국밥 한두군데쯤 있겠지
하는데. 진짜 시장 어딘가에서 돼지국밥 국물의 꼬리꼬리한 냄새가 난다.
맡으면 좀 역할수도 있는데 나같은 마니아에겐 식욕에 불을 훅 당기는 그 냄새.
나는 개처럼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간다.

냄새가 가장 짙은 곳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아무것도 없다.

여기가 아닌가?
다른곳으로 이동하니 냄새가 옅어진다.
어?
이상하다.
다시 제자리로 이동하니 냄새가 가장 짙어졌다.
어?
아무것도 없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려다가.
나 왠지 이런 이상한 자존심 있다.
묻기 싫더라. 지는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찾아봐야지. 하다가 결국.








..............................






공복으로 난 추풍령을 향해 달려간다.....











식당가가 잔뜩 있는 김천 서부의 부곡동을 지나니 본격적으로 시골이 나타난다

좌우로 논밭이 있고.

김천 시내는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김천을 벗어나면 시골이 된다.



사실.

시골 진입은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다.


대구를 벗어나서 왜관까지, 또 왜관을 벗어나서 김천까지.

이 50킬로의 여정이 도시권이라고 하긴 좀 힘들어도, 논밭이 있고 막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이런 구역은 없었다.

산 사이로 난 국도를 따라가다 드문드문 마을이 나타나는거였지 평야을 지나고 이러진 않았으니까.


근데 김천을 벗어나자 처음으로 이윽고 탁트인 들판이 나타난다.

또한 여기서부턴 레알레알 초행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김천까지는 4번국도를 이용해서 자동차로 자주 왔다갔다 하던 곳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생전 처음 가 보는 길이다.






영남제일문


4번국도는 길 따라서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왜관에서 김천까지는 '칠곡대로'

김천에서 추풍령까지는 '영남대로'

추풍령에서 옥천까지는 '난계로' 

옥천에서 대전까지는 '옥천로'


지금 난 영남대로를 지나고 있으며, 영남대로의 한 복판에서 영남제일문을 만났다.

정말 이 곳을 지나면 이제 영남은 거의 끝난다.

이 문을 통과하여 조금만 더 가면 충청도가 나타나니까.

엄밀히 말하면 여기가 김천의 끝은 아니지만, 여기서 충북 영동군까지는 그냥 허허벌판 시골과 오르막고개가 전부다.







영남제일문의 앞에 써 있는 비문이다.

그래.

나에게 축복을.





윤은혜와 오만석이 나온 '포도밭 그 사나이' 라는 드라마가 충북 영동에서 촬영되었었다.

김천의 서북부, 그러니 영동과 접경한 쪽에서부터 서서히 국토는 포도에 뒤덮이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포도포도포도포도포도 타령은 영동 다음 도시인 옥천을 벗어나서야 끝난다.

그러니 김천 말 - 영동 - 옥천 초 여기까지가 포도의 나와바리.













쭉 서쪽으로 뻗어있던 길이 오른쪽으로 굽으며 북행으로 변한다

미리 인터넷 지도로 확인했을 때는 여기서부터 슬금슬금 오르막이 나타나며 추풍령에 진입한다

그리고 곧 충청도에 들어간다




4번국도 위를 지나는 KTX 레일

나는 서울까지 아직 2박 3일이 남았지만, 이 길을 지나는 KTX 는 1시간 뒤면 서울에 도착한다.










KTX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표지판

절망스러울 따름이다


저 멀리서 스물스물 오르막이 보인다.

로드뷰로 확인했을 때도 여기서부터 오르막이 대충 시작된다.







두둥

드디어 본격적으로 독이빨을 드러낸 추풍령 고개

자전거로 더 진행할 수 없었다

끌고 걷기 시작한다.


산고갯길을 따라 좌우 펜스에 중앙분리대까지 탁 박아둔 오지

대구를 나서서 처음으로 주변에 민가 하나 안보이는 쌩 오지로 들어간다

























얼마를 걸었을까

인터넷 지도로 확인해보니 이제 추풍령은 얼마 안남았다

오르막은 끝도 없다


근데 너무 지친다

차들은 쌩쌩 달리고

누군가가 나를 치어죽이고는 그냥 길 밖 풀숲에 유기해도 난 발견안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걱정증이 좀 있다 ㅋㅋㅋㅋㅋ


나는 길 바깥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자전거를 질질 끌고가며 속도도 안나고 지겹고

인터넷을 뒤지는데 비보가 전해졌다


로빈윌리엄스 사망. 자살로 추정됨.



불세출의 코미디언이었다.


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친구들은 '미세스 다웃파이어' 라는 코미디 영화를 알거다.

대충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혼하고 양육권까지 모두 넘겨준 아빠 (로빈 윌리엄스) 는 가족들이 너무 보고싶어서

할머니로 변장을 하고 전부인네 가족들의 가정부로 들어간다.

그 와중 생기는 각종 에피소드들이 영화의 내용이다.

물론 헐리웃 가족영화답게 전부인은 재혼하려 하고, 아빠와 아이들은 은근 방해를 한다.

페어런트 트랩과 비슷.




이 영화 이외에도

어른이 된 피터팬으로 등장하는 '후크'


무려 20세기 느와르의 시초이자 정점이자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인 '대부'의 감독 프란시스 코폴라가 만든 조로증을 소재로 한 영화인 '잭' 등을 추천한다. (대부와 전혀 다른 영화다. 놀라울 정도로. 민요와 테크노 정도의 차이)


Rest in peace.















드디어 경상북도를 벗어나고 충청도에 도달했다.





김천에서 출발한 지 2시간만에 충청도에 온거다.

어제 오후 1시 정도에 출발했으니 하루가 안되어 경상도를 벗어났다.












궁금증이 일었다.

추풍령이 있는 영동은 충청도.

내 등 뒤에 펼쳐진 김천은 경상도.


익히 우리는 경상도 말투와 충청도 말투가 다름을 잘 알고 있다.



영동과 김천 경계에는 마을이 각각 하나씩 있다.

두 마을의 거리는 불과 몇백미터.

그냥 한동네나 다름없다.


영동은 추풍령 마을.

김천은 광천 마을.



그렇다면 두 마을 사람들의 말투는 경상도 말투와 충청도 말투로 상이할까?




궁금했다.

내가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어볼 순 없어서 인터넷 찬스를 썼다.


추풍령 사람들 말투에 경상도색이 많이 묻어있댄다.



원래 충청북도 쪽이 충청남도 쪽보다는 사투리가 덜하다고 알고있다. 

충주를 위시한 경기도 접경 사람들 말투는 그냥 경기도 말투였다.

나중에 보니 추풍령 사람들은 경상도 말투를 쓸 수 밖에 없겠다 싶었던 게

추풍령이 영동의 인구밀집지역인 읍내와 어마무지하게 멀더라. 차라리 김천쪽이라고 보는게 낫겠드만.












추풍령 표지석?

사진 좀 찍었다.


덩치가 좋은 어떤 아저씨도 오토바이로 전국여행 중인가 이 앞에서 오토바이 세워놓고 사진 찍더라.

그 아저씨도 어딘가에 여행의 썰을 풀어놓겠지.


사진 한방 부탁하길래 찍어주었다.


여행중이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냥 대화 길어질까봐 치웠다.

낯선 사람하고 말 길게 하는것도 그닥 좋아하지도 않고.

타인에게 호기심을 지닌 오지라퍼로 보이고싶지도 않았고 ㅋㅋㅋㅋㅋㅋㅋ

성격 삐딱한게 여과없이 드러나는 여행 ㅋㅋㅋ






배도 고프고 해서 4번국도를 이탈하여 추풍령 마을로 들어갔다

밥이나 먹고 가던길 마저 가야지





그냥 그런 시골마을







김천에서 추풍령으로 들어오는 버스






추풍령에서 영동가는 버스







경상북도 소재 시내버스와 충청북도 소재 시내버스가 한 터미널을 사용하고 있다.


대구에서 250번 버스를 타면 경상북도 칠곡군까지 간다.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또 몇번몇번을 타면 구미까지 간다.

구미에서 또 김천 오는 버스를 탈 수 있다.

김천에서 또 뭐를 타면 추풍령까지 온다.

추풍령에서 버스를 타면 영동까지 간다.


시내버스로만 전국을 종단할 수 있다. 그런 컨셉의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고.

뭐. 난 자전거로 한다. (사실 버스여행이 시간 더 걸린다. 환승시간 텀이 극악이라)







추풍령 터미날










농협 창고 벽에서 비보잉을 하는 상모를 보았다












추풍령 역이다.

구름도 쉬고가고 바람도 자고가는 추풍령 역은 경부선에 위치한 역 중 가장 해발고도가 높다.

227미터.

한국에서 제일 높은 건 아니고 경부선에서 제일 높다.

한국 최고 높이의 역은 태백선의 추전역.


무려 855미터이다.











대구를 보니 반갑다

왜 대구패션일까











짜장면집에 가서 짜장면 하나 시켰다.

어디서 읽었는데 마라토너들은 마라톤 전날 짜장면을 먹는다던가.

탄수화물이 풍부하고 뭐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운동원이 되는 글리코겐이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일단 짜장면을 먹었다.


곱배기를 시켰는데. 양이 넘 많았다.

일부러 곱배기를 시켰는데 남길 순 없고.

들입다 들이붓는데 너무 배가 부르다.


중간에 몇번 쉬고 꾸역꾸역 먹고. 또 쉬고. 아 도저히 못먹겠다.

그래도 지금 먹으면 또 언제 뭘 먹을수 있을까.

아 그래도 못먹겠다 너무 많다.


남기고 나왔다.


웃긴게 다른 자전거 여행꾼들 블로그 읽으면 당 떨어질까봐 초코바를 수시로 먹고 비상식량을 목숨처럼 챙기던데

나는 아침에 한끼 먹으면 목적지 도착할 때까지 배가 고프지가 않더라.

그래서 아침에 한끼 먹고 도착해서 한끼 먹고. 늘 이렇게 여행했다.


몸에 돼지처럼 곳곳에 기름이 끼어있으니 그런거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인간 낙타다

인간 낙타



짜장면 먹고 길을 나선다

아직 갈길은 80킬로는 남았겠다

아 미치겠다


나선 시간은 오전 10시 40분 즈음.


후루루루룰

추풍령 오르막 적금 만기로 내리막 연금을 받아먹기 시작하는 중인데

반대편 차선에 자전거 여행꾼들이 보인다.

자전거 여행꾼을 마주친 적은 처음이다.

저들은 하행 중이네. 지금 오르막의 막바지를 오르고 있다.

추풍령에서 오르막 꼭대기를 찍고 김천까지 꿀내리막을 내려가겠지. 힘내쇼 얼마 안남았수다.


난 스르르르르르 내려가다 만다.


김천에서 추풍령 방면은 급오르막인데

추풍령에서부터 영동까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다.


왜관에서 김천 때랑 마찬가지다.

오르막 적금 부을 땐 개고생인데 내리막 연금 받아먹을땐 찔끔찔끔이다

아 이거 일시불로 훅 좀 땡겨주지


물한모금 하려고 자전거를 세웠다.

근데 어?


자전거 후레시가 없다.

어디서 빠졌지?


짜장면 먹을 때 자전거를 반점 밖에 세워뒀는데

그때 누가 빼갔나?

언제부터 없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하는건 아니다.

오천원도 안줬지싶다.

근데 야간라이딩이 불가능해졌다.

오천원짜리 싸구려 후레시로 야간라이딩을 할 생각따위도 없었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제 야간라이딩은, - '불가피하면 할수도 있겠다' 가 아니라 '절대 하면 안된다' - 가 되었다


자 가자

영동으로










김천과 영동 사이에는 자전거 여행꾼들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 두 스팟이 있다.


그 중 하나인 애교리다.

자전거 타고 오가는 사람들 블로그엔 무조건 있다.


애교가 가장 많은 마을이란 뻔한 드립과 함께.









Feel so good.










허허허허










황간으로 들어왔다

무궁화호 타고 경부선 오가는 사람들은 몇번 들어봤을꺼다.


황간.



서울대전대구부산


요런 대도시들 말고

그냥 좀 애매하게 듣도보도 못한 도시인데 꼭 서는 역이 있다

오묘한 존재감


나의 경우에는 황간역이나 약목역이 좀 그런 느낌이다

황간역의 경우는 간이역이 아니라 보통역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영동 군내와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렇다고 하네.



암튼 그래서 황간은 뭔가 친숙하다.



사진으로는 다 안담기는데 당연히.

스마트폰의 광각 카메라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는데 있어서는 눈보다 열등하니까.


저 산이 아주 멋드러졌다.


인터넷 검색해보니 산 이름이 주행봉?


뭐 그렇다네. 아주 멋졌다. 크고 아름다웠다.









낯도 좀 씻고 화장실도 사용하고

그리고 친숙한 황간역 한번 보고도 싶고

그래서 황간역에 갔다


뭔가 아주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왜일까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는 역이었다



방금 글쓰며 알아보니

황간역장님이 철도동호회 회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황간역을 꾸미고 가꾸는 데 아주 정성이 많으시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온라인에 올리기도 하고

주변 인구도 여객수요도 적은 역인데도 외부에서 음악회 같은 행사들도 자주 초청하시고

아주 직업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분 같다


본받아야지



그래서 40일 전에 느낀 그 역에서의 따뜻했던 기분이

아직도 느껴지는가보다.










김천과 영동 사이에 존재하는 두 포토스팟 중 하나인 노근리가 가까워온다

노근리가 가까워오는 것은 영동 군내와도 가까워진다는 것







포스팅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다

둘로 나눠야지




노근리가 머지않았다.................................







(2일차 여행의 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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