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27 작성


여행을 한 지 일년 반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나는 마지막 4일차의 여행기를 미완성으로 남겨두고 그 찝찝함을 1년 넘게 유지하고 있었다

더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 여행기를 작성하려 한다



2014년 광복절 하루 전날

2014. 08. 14


전날 개고생을 한 터라 몸 상태는 장난이 아니었다.

밍기적밍기적대다가 오전 11시 즈음에 숙소를 나섰다





유관순 누님과 인사하고 난 북쪽으로 향한다



봉명역




이 집이 호도과자의 원조집이랜다

난 여기서 호도과자를 사서 선물 보낼 곳에 택배를 부쳤다






그 사실을 아는가? 천안에는 비둘기가 없다.

천안역 광장 굉장히 오랜만에 와 본 곳이다.



첫째날 대구 - 김천

둘째날 김천 - 대전

셋째날 대전 - 천안

넷째날 천안 - 서울


가장 걱정이 안되는 날이 넷째날이었다. 왜냐면 경기권 구간이므로 모두 도심지 통과였기 때문에 조난(?)의 위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천안부터 서울까지는 인적이 끊긴 구간이 거의 없었다. 아마 이날 내가 스쳐가며 본 사람들이 수천명 어쩌면 만 단위는 족히 되었을거다.


천안역부터는 딱히 지도가 필요없을거라 예상했다.

1호선 옆길만 쭉 따라가면 서울이니까.

내가 가는 길 옆으로 계속 1호선이 있었다.


천안 북부는 논과 밭, 그리고 공장지대였다.

굉장히 지루한 길이었다.

전전날의 육체적 고통과 전날의 정신적 고통으로 너덜너덜해진 심신이었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여유있게 노래부르며 자전거를 밟았다


그 때 가게에서 전화가 왔다.

1년 반이 지나서 잘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 재고가 빵구났던가 뭔가 문제가 생겼었던 전화였다.

나는 어찌어찌 그걸 해결할 방법을 알려줬던 것 같다.

멘탈이 조금 흔들렸던 기억이 난다.


천안 바로 위가 경기도 평택이다.

난 뭐 천안역 지나면 금방 평택이 나올 줄 알았는데, 천안역에서부터 평택까지의 거리가 제법 되었다. (약 20킬로미터)

또한 굉장히 지루한 길이었다.

다행히 큰 오르막 내리막도 없이 평탄한 길이었다.














천안의 끝자락에서 만난 유적지

국보 7호라는데 뭐 난 첨보고들었다.

국보 1호가 숭례문인 건 알고있다만..















천안과 평택의 경계선은 안성천이라는 작은 개천이었다

이 개천을 넘으며 난 여행코스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면서도 가장 익숙하지 않았던 지역인 충청도를 51시간만에 벗어났다





평택에 들어서자 술 잘마시게 생긴 아파트가 나를 반겼다








평택시청에서 잠시 전화통화를 하며 숨을 돌렸다.

평택시청은 평택 제일 남쪽 끄트머리에 붙어있었다.







희한하게 몸을 그렇게 쓰는 여행인데도 며칠간 그렇게 배는 안고팠었다

여행 당시만 해도 내가 비만인이었기 때문에 몸에 비축된 에너지가 많아서 그랬을 것 같다고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다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먹을 땐 무지하게 먹었다

음식먹을 시간도 아까웠다 갈길이 머니까

먹을 수 있을때 몰아서 먹어놔야지


김밥집 주인내외한테 나 지금 자전거로 대구에서 이까지 왔고 또 서울까지 갈거라고 자랑을 했다

며칠간 식당에 갈때마다 그 자랑을 했었다 ㅋㅋㅋㅋㅋ 대단한 도전을 하는 청년이란 소리를 듣고싶었나보다 ㅋㅋ



밥을 먹고 나와서 길을 잃었다

동네가 새로생긴 신도시라서 지도에 제대로 반영이 안되어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도보다 더 믿을만한게 길을 찍은 로드뷰인데, 로드뷰로 찾아보니 아예 다른 동네처럼 나와있었다

나는 여기서 동네를 몇바퀴 돌며 몇킬로미터 십수분을 손해봤다

비도 오고 천안-서울 코스는 100킬로 가량이 되었던데다 난 천안에서 너무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면 안됐다

근데 지체하고 말았던 것이다


천안에서 평택까지 20여킬로. 평택 안에서 움직인 거리도 10킬로가 안되었다. 다시말해 난 아직 30킬로도 움직이지 못했다.

근데 벌써 시간은 오후 3시를 향해가고 있다.


오늘은 출발도 늦었지만 속도조차 느렸다.




열심히 길을 찾아서 달렸다

빗발은 더 굵어졌다

어휴


길을 찾았다. 난 다시 서울로 달린다.







그때였다.




두둠칫




그래 걱정걱정하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타이어가 펑크나버린 것이다


여행에 이런 일 물론 당연히 겪을 줄 알고 있었다

저 작은 바퀴, 이 큰 몸뚱아리, 이 적지않은 거리, 땡볕에 달구어진 아스팔트, 빗발에 미끄러운 아스팔트

어찌보면 아무일 없이 평택까지나 온 것이 기적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이러면 안됐다

난 시간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난 단 한번도 타이어 펑크를 스스로 때워 본 적이 없었다


인근에 있는 자전거포를 검색해 보았다.

없다........

있다해도 몇킬로미터 밖이었다. 자전거를 끌고 거기까지 갈 시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직접 하는 수 밖에..


(블로그에 쓸 거리 생겨서 내심 흐뭇했던 것 같다. 그래 이게 바로 추억이다! 아무일도 없었다면 그날 고생은 없었겠지만 일년 반 뒤에 떠올릴 추억도 더 적었겠지!)







수리공구를 꺼냈다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한번 봐 뒀기에 그대로만 따라하자 생각했다.

허나 타이어 튜브를 끄집어내는거부터가 고행이었다. 그리고 비가 너무 내려서 본드질이 잘 안되었다

약 40분 정도를 악전고투 했었던 것 같다


두둥


수리에 성공했다.
시간은 오후 3시를 넘겼다. 난 아직도 평택이다.
남은 거리는 대략 70킬로는 될 듯 하고.
아 오늘 과연 서울에 도착할 수는 있을까....






바퀴를 수리한 뒤로는 겁이 나서 주행을 험하게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제대로 바퀴를 떼우긴 한건가. 좀있다가 다시 터지진 않을까....

또 바퀴가 터진다면 나는 1박을 추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변에 자전거포가 나온다면 바로 전문가에게 새로 수리를 맡기리라 생각하고 달렸다.


평택 북부의 길도 별로 재미가 없었다.


평택시의회 앞의 내리막을 신나게 내달리다가 오르막 육교 이딴거 몇개 지나고 그 뒤부턴 원균장군묘 안내표지판만 계속 나왔다

왜 원균의 묘 따위를 안내하는지 납득이 안되었던 평택북부의 길이었다


과자공장 한개 지나고 좀 가다보니 감격스런 표지판과 조우하게 된다.





감격!

처음으로 표지판에 서울까지의 거리가 떴다!

서울시청까지 63킬로미터라면 서울 접경지까지의 거리는 한 50킬로미터 되겠지.

일단 오늘 서울까지는 한번 가 보자.


하지만 이 때의 시간이 오후 4시 20분이다.

아.. 너무 늦은건가.



[까지 작성]



2017. 5. 9


일년 4개월 전에 요 위에까지 썼고 또 시간이 이만큼 지났다.

자전거로 서울을 다녀온 지 벌써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근성으로 마저 쓴다.








평택을 지나서 이제 오산이다.

경기도 오산!





빗속에 매여있던 강아지 두 마리.

사나워 보였다.

3년 전이니 이 강아지들에게는 수십년만큼의 시간이 흘렀겠지 ㅋㅋㅋ








넘나 넘나 지루하던 오산-수원 구간이었다.

마음은 급하고 몸은 힘들고 비는 오고.

밤에 친구 만나서 술한잔 하려는데 과연 오늘 갈 수 있을까.

그리고 빗속에 이 더러워진 자전거와 이 몰골로 나는 과연 지하철을 탈 수 있을까.


퇴근시간이 가까워와서인지 서울에 점점 가까워져서인지 내 옆으로는 차가 잔뜩 밀려 있었다.

나는 엉덩이가 진짜 너무너무 아팠다. 그래서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안장위에 받쳐놓고 한쪽 엉덩이씩 번갈아 걸치면서 자전거를 몰았다.


에너지가 쭉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스트리트파이터2 의 마이크 바이슨(내수판:발로그) 스테이지 테마 노래를 들으며 힘을 내고 있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몇년간 그 노래는 내가 운동할 때 힘낼 때 듣는 노래가 되었다.


링크 : 발로그 테마 (https://www.youtube.com/watch?v=uKubwMZxg2M)







좀 지루하던 소도시들을 지나고 드디어 수원이 나타났다.

트럭이 처박았는지 우그러져 있던 수원의 얼굴.






수원에서부터 안양까지는 도시 전체가 오르막이었다.

친하게 지내는 동네 형님 이름이 '경수'형인데 이름이 같은 길을 찾았다.

며칠째 외롭게 혼자 자전거질만 하다 보니 아는 이름만 봐도 반가웠다.


폰과 아이패드 배터리는 점점 닳아간다. 사진을 아껴 찍어야 한다.

사진을 못남기는 것도 큰 문제지만 아이패드가 꺼지면 지도를 보지 못하고 폰 배터리가 다되면 친구와 연락을 할 수 없다.


모바일 기기들이 방전되는 것이 작은 문제라면

내 몸이 방전되는 것은 진정 큰 문제였다.

라이딩 막판 계속되는 언덕길은 너무 힘겨웠다.


나는 가방에서 커피믹스를 꺼내서 물도 없이 그냥 한개를 입에 털어넣었고

슈퍼마켓을 발견하고는 아이스크림을 한개 사서 먹었다.

힘이 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급한 나는 그 무지막지하던 오르막을 그냥 악으로 깡으로 최고속으로 올라갔다.

원래같으면 오르막은 자전거 끌고 걸어올라가는데 시간이 너무 없었다.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다 만난 수원 성

이 때 나는 스트라이다를 팔아치워버리고 로드바이크를 사겠다 결심을 했다.

스트라이다는 자전거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스트라이다를 아직 팔지 않았고 로드도 사지 않았다)




수원을 드디어 벗어났다. 수원에서 미친듯 올라왔던 오르막만큼 한동안 내리막이 계속 되었다.



이 때 무슨생각을 했는지 아직도 기억난다.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몸이 반으로 쪼개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몸이 반으로 쪼개질 것 같다' 라는 표현을 여행 후기에 반드시 넣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진짜 엉덩이 죽을 것 같았다.


스트라이다는 탑승 자세가 일반 자전거와 다르므로 안장통이 심한 편이다.





안양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였다.

안양.

이제 진짜 서울 코 앞이다.

어떻게 가긴 가려나보다.







계원예대 앞 고가도로 밑을 지나며 본 하늘.


서쪽의 노을이 진짜 예뻤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해가 진다.


해가 지면 자전거 운행은 굉장히 힘들어진다. 다행히 안양 서울 도심구간이므로 다행이다.

하지만 웬걸.

안양에서 과천 넘어가는 길은 도심이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경로를 안양 - 과천 - 남태령 - 사당으로 잡았다.


과천 들어가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서 고속도로로 올라갈 뻔 했다.

육포 될 뻔.



폰 배터리가 없어서 과천 사진을 찍지는 못했는데

과천은 도시 자체가 아주 예뻤다.


비는 그치다 오다 했다.

빗길에 미끄러운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바퀴가 미끄러져 자빠졌다.

아팠다..... 진심 아팠다.





과천을 지나고 지루한 남태령을 올랐다. 남태령을 지나면 서울이다.

과연 서울이 나올까. 서울.. 어서 서울.

난 지쳤다. 너무 힘들었다. 며칠간 쌓인 피로와 고통으로 힘들었다.

마지막 구간을 오르막으로 장식한다. 남태령.

그리 높은 오르막은 아니었지만 완만하게 굉장히 길었다.


저 고개를 넘으면 서울이 나오겠지.











남태령 꼭대기에 올랐고 며칠간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것을 보고 말았다.


서울특별시


드디어 서울에 도착하였다.



감격하여 사진을 찍고 다시 이제 도심을 향해 내리막을 내달렸다.

몇킬로동안 사람한명 안보이던 남태령을 지나자마자 순식간에 번화가가 나타났다.


사당





뭐 조금조금씩 밝아지는것도 아니고 순식간에 빠박 하고 나타난 사당 번화가.


온 자전거와 종아리가 구정물 범벅이 되어 있었고 나도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자전거와 다리를 대충 닦았다.

지하철을 타야 하기 때문이다.

내 최종 목적지는 구리다. 사당에서도 한참 더 가야된다.


아무튼 자전거 여행 총 몇킬로 아마 삼백킬로는 넘을테고 삼백오십킬로 되려나.

아무튼 그 지루하고도 흥미진진했던 모든 여정이 끝났다.


수고했다!!!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사진을 부탁했다.

애초에 도착하면 목에 걸기로 한 금메달을 꺼내어 목에 걸었다.

지금 보니 그냥 동네 미친사람같네.






4호선을 타고 이촌역에 왔다.

이 사진을 끝으로 폰은 꺼졌던 걸로 기억한다. 다행히 여행사진은 다 남겼다.

친구와 연락이 안되어 욕을 좀 먹었던 걸로 기억된다.


이촌역에서 중앙선으로 갈아타고 구리로 갔다.







술 퍼먹었다.

아무리 아파도 술은 들어간다.




다음날 밤 종로로 놀러갔는데. 진짜 포경수술 한 사람처럼 걸었다.

아예 보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한두시간 돌아다녔나 발이 너무 아파서 금방 집으로 돌아갔다.


구리와 서울에서 이틀밤을 보내고 KTX를 타고 대구로 돌아가는 길.

몸이 아파서 무궁화호를 타지도 못할 것 같고 해서 KTX를 탔다.


마침 구미와 김천에 사는 동생들이 내려가는 길에 구미 들렀다 가라고 하여 김천구미역을 목적지로 하였다.


김천에 사는 동생은 자전거로 서울 올라갈 때 1박을 제공해 준 감사한 아이다.

구미에 사는 동생은 내 대학 1년후배이다.

난 얼마 전 이 두 선남선녀를 서로 소개해 주었고 주선자 자격으로 셋이 구미에 모여서 술자리를 가질 계획이었다.









좀 허무했다.

자전거로 한시간에 10킬로씩 이동했다.

근데 이 무지막지한 괴물은 한시간에 300킬로를 이동한다.


1분에 5킬로씩, 2분이면 내가 자전거로 한시간동안 달린 거리를 간다는거다.

노래 1절 듣는 시간동안 말이다.


아...





김천구미역 도착했다.

또 술이다.

난 자전거여행을 하는동안 살이 2킬로가 쪘더라.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바로 다음달부터 다이어트에 돌입하여 10킬로 정도를 뺐다.


열심히 밀당하며 썸타던 김천과 구미의 두 남녀는 이 날 밀당과 썸을 끝내고 정식으로 교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반년 전 결혼에 골인하였다.


.....


나는... 음...

뒤에 내 이야기도 쓰겠다.







구미에서 하루를 보내고 대구로 돌아오는 길.

시내버스만 타고 대구로 돌아가기를 시도했다.


구미에서 왜관까지 왜관에서 문양까지 구미버스 칠곡버스를 환승하며 이동한 뒤

문양에서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왜관에서 1회 환승




그리고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대구.

이로서 진짜 여행은 끝나는거다.





하나 쉽게 끝날리가 없지.

문양에 내리자마자 자전거가 펑크났다.

자전거 펑크 수리는 이젠 장난이지... 하며 패치로 타이어를 때웠으나 잘 때워지지 않았다. 계속 바람이 샌다.

결국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 끝!




문양 앞에 있는 식당 이름.

나도 그렇고, 정가들은 자기 성 붙이는거 참 좋아한다.

뭐 저집 사장님이 진짜 정씨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만 ㅋㅋㅋ









이로서 자전거 3박4일 뒷풀이 3박4일 그리고 쓰는데 3년 가까이 걸린 여행기가 끝났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감사할 사람이 많다.



일단 가장 감사할 분은 그 당시 나의 여친이었고 현재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계실 K양

여행 전에 일주일정도 나에게 커피 만드는 법을 배워서 내가 자리를 비운동안 내 가게를 대신 운영해 주었다.

이 분의 협조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여행 자체를 갈 수 없었을거다.

비록 저 한달 뒤에 헤어졌지만 언제나 행복하길 응원함.


그리고 서툴던 초보 K양을 잘 서포트해 준 당시 알바 L양

예쁘고 친절해서 손님도 많이 끌어다줬다

얼마전에 멀리서 마주쳐서 순간 못알아보고 지나치고나서 잠시 뒤에 어! 쟤! 했었다.

지금 울가게 앞 대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잘 하고 있는걸로 알고있다. 보니까 남친도 생긴거같던데 항상 즐겁길.


그리고 반년 전 결혼한 김박 부부.

갈때 1박 올때 1박 신세졌다. 고맙지만 내가 더 큰거 해준거니 나에게 더 고마워해라.

이혼하지 말고 잘 살아라.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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