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8일 수요일 (3일차)




3일째 아침이 밝았다

몸의 변화는 느낄 수 없다

피부는 좀 좋아진 것 같기도 한데 요즘 내가 좀 비싼 화장품을 쓰며 관리를 받기 때문에 채식의 효과인지 알 길이 없다

체중은 그대로다 밤마다 술을 퍼먹어서 그런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내 몸을 이루는 구성성분 중 동물로부터 얻은 것들은 서서히 빠져나갈테고

난 식물로만 만들어진 초식인간의 육체로 점점 바뀌어갈테고

3일이나 되었으니 더이상 소화기관에는 외부에서 음식으로 섭취한 동물성 물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소도 뭐먹이며 키우느냐에 따라 고기맛이 달라진다는데

나도 지금 내 고기맛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식성을 바꾼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의 물리적 재료를 바꾸는 작업이다

육체란 집을 짓는데 있어서 벽돌의 종류 시멘트의 종류를 바꾸는 것이다


또한 성격에도 어느정도는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지.

어떤 식으로든 아주 미약하게나마.

채식을 통해 채식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친구들이 바뀐다거나. 그래서 사상이 바뀐다거나 이런 식으로.


음식이 인간을 구성하는 물리적 재료라면,

친구와 지식과 양심은 비물리적 재료 아니겠나.



개똥철학

역시 배부른 놈보단 배고픈 놈이, 만족스런 자보단 불만족스런 사람이 생각이 많은갑다.










아침식사



보라

내가 먹을 수 있는 반찬의 가짓수는 점점 늘어난다

이 모든 것들에 단 0.000000000001그램의 동물성도 들어있지 않다

어머니께서 가족들의 식사를 전부 채식으로 변경해 버리셨다

이번주는 내 도전이 아니라 어머니의 도전이 아닐까 싶다


순두부, 오이, 물김치, 마늘장아찌




이번주의 음식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다

그냥 일반식을 먹듯 이만큼 자연스럽고 완벽히 만족스러웠던 음식섭취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침을 먹고 얼마 뒤

할머니께서 집에 오셨다


손에 직접 만드신 만두를 한아름 들고.

우리 할머니표 만두 대박이다

김치와 고기를 갈아서 직접 핸드메이드로 만드시는데

하나하나가 어린애 주먹만하다


가족들 전부 음식량이 적은 편이라 이 만두 보통 내가 다 먹는데.

못먹는다.

아 미치겠다


주말되면 다 먹어야지 내가 다 먹을테다












오전 11시 즈음 해서 옷 좀 산다고 동성로에 나갔다.

유니클로에 스테테코 반바지 사러 갔는데 11시 30분 오픈이랜다




아침에 가게 가서 커피 들고나와서 다 마셔버렸으니까 커피집 가기도 뭣하고

딱 30분 비는데 이시간 맞춰서 밥한끼 하면 딱 시간 맞겠다



.... 했지만 ....


뭐 먹을만한걸 찾을 수는 없었다.

전원돈까스 가고싶었다.


돈까스

맛있는 돈까스.


돈까스인가? 그렇다

천천히 들어와봐 아주 천천히


위아래의 앞니가 닫히며 바삭한 튀김옷을 와삭 깨어부시고 지나면 나타나는 쫀득한 고기

쫀득한 고기를 쭈아악 누르면 눌릴데까지 눌린 고기는 못견디고 양 옆으로 절단이 되고 이윽고 만나는 윗니 아랫니

이렇게 끊어진 돈까스 조각은 혀를 사용하여 입 안으로 옮겨지고

안에서 기다리던 어금니는 침과 섞인 기름진 고기를 맷돌처럼 갈아서 삼키기 쉬운 형태로 만들고

이 음식들은 혀와 목의 근육으로 만들어진 롤러코스터에 탑승하여 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 올라가

눈 앞에 목젖이 나타나면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식도를 타고 전속력으로 위장으로 돌진

위장에서부터 구불구불구불구불구불구불구불구불 미친듯이 꼬여진 레일을 타고 돌면서

공포심에 수분을 모두 빼앗기고 너무 무서워 얼굴빛이 똥빛으로 변하고

그렇게 10시간 가까운 롤러코스터를 끝내면 다시 밝은 세상으로 빡!








난줄 알았는데 어두컴컴한 이곳은 낯선 수영장

갑자기 환해지고 위를 바라보니 어제 날 삼킨 저 사람이 내려다보다 요상한 밸브를 누르니

쿠르르르르르르륵 소리와 함께 수중터널로 빨려들어가며 빡!








.............................................










결국 점심은 물김치와 오트밀.




3일째니까 익숙해지지만

가끔 발작처럼 엄습하는 그리움은 익숙함의 크기만큼 날 괴롭힌다







내 그리움의 흔적들











 









약속은 없었다

저녁에 공원에서 운동 좀 하고, 맥주 한캔 하고 집에 들어와서 밥통을 열었지만 밥은 없었다

굶어야지 뭐

영원한 동반자 물김치와 함께





식탁 위에는 식구들이 남긴 몇개의 구워진 만두들이 날 보고 방긋 웃고 있었지만

난 그들을 내려다보며 울상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내 이번주말 니들을 꼭 예뻐해줄께

조금만 기다려







- 3일차 성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