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에 해당하는 글 2건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어


- 듀스 '우리는'






낯선 공간에서 깨어난 아침

혼란스럽다

온몸이 아프다


그렇지

나는 자전거를 타고 김천으로 왔다

그리고 술을 3차에 걸쳐 퍼먹고 아는 동생네 가게 와서 잤다



아...











숙취가 거의 없는 편이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쪼끔 있긴 있다 특히나 어제처럼 무지막지하게 운동을 한 뒤 또 무지막지하게 술을 들이부은 날은 당연히도.







오늘 내가 가야 할 예상 거리는 김천에서 영동, 옥천을 거쳐 대전까지 약 100킬로미터

한시간에 10킬로씩 간다 치면 10시간.


김천에서 영동 사이에는 구름도? 바람도? 아무튼 뭣도 쉬고 간다는 추풍령 고개가 있다.

구름도 바람도 쉬고 간다는데 나? 당연히 쉬고 가겠지.

어마어마한 오르막이 존재할거란 막연한 생각이 든다.


지도로 봐서 길은 알겠지만 오르막 내리막까지 지도로 하나하나 다 알아내기는 쉽지가 않다

아무튼 난. 오늘 추풍령을 넘어서 경상북도를 벗어나 충청도로 들어가는거다.








7시 40분이 좀 넘어서 일찌감치 출발했다 갈 길이 멀다







숙소에서 나서고 5분여만에 김천역 돌파

김천역에 개인적인 추억도 좀 있지만 추억팔이 하며 머무를 시간이 없다

사실 어제 김천에서 술퍼먹으며 추억세척 싹 끝냈음





김천역을 지나니 김천시장? 뭔 시장이 하나 나왔다.
전날 술도 꾸역꾸역 퍼넣은데다 아침 공복. 김천을 벗어나면 바로 시골길 예상.
그리고 김천 벗어나자마자 추풍령 고개를 타야하고.
에너지 보충을 해야한다. 


시원하게 돼지국밥 한그릇 말아먹고 출발하자

하고 시장을 둘러보았다
예전에 김천에서 돼지국밥을 굉장히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났기에
김천의 시장 뒤지다보면 돼지국밥 한두군데쯤 있겠지
하는데. 진짜 시장 어딘가에서 돼지국밥 국물의 꼬리꼬리한 냄새가 난다.
맡으면 좀 역할수도 있는데 나같은 마니아에겐 식욕에 불을 훅 당기는 그 냄새.
나는 개처럼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간다.

냄새가 가장 짙은 곳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아무것도 없다.

여기가 아닌가?
다른곳으로 이동하니 냄새가 옅어진다.
어?
이상하다.
다시 제자리로 이동하니 냄새가 가장 짙어졌다.
어?
아무것도 없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려다가.
나 왠지 이런 이상한 자존심 있다.
묻기 싫더라. 지는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찾아봐야지. 하다가 결국.








..............................






공복으로 난 추풍령을 향해 달려간다.....











식당가가 잔뜩 있는 김천 서부의 부곡동을 지나니 본격적으로 시골이 나타난다

좌우로 논밭이 있고.

김천 시내는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김천을 벗어나면 시골이 된다.



사실.

시골 진입은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다.


대구를 벗어나서 왜관까지, 또 왜관을 벗어나서 김천까지.

이 50킬로의 여정이 도시권이라고 하긴 좀 힘들어도, 논밭이 있고 막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이런 구역은 없었다.

산 사이로 난 국도를 따라가다 드문드문 마을이 나타나는거였지 평야을 지나고 이러진 않았으니까.


근데 김천을 벗어나자 처음으로 이윽고 탁트인 들판이 나타난다.

또한 여기서부턴 레알레알 초행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김천까지는 4번국도를 이용해서 자동차로 자주 왔다갔다 하던 곳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생전 처음 가 보는 길이다.






영남제일문


4번국도는 길 따라서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왜관에서 김천까지는 '칠곡대로'

김천에서 추풍령까지는 '영남대로'

추풍령에서 옥천까지는 '난계로' 

옥천에서 대전까지는 '옥천로'


지금 난 영남대로를 지나고 있으며, 영남대로의 한 복판에서 영남제일문을 만났다.

정말 이 곳을 지나면 이제 영남은 거의 끝난다.

이 문을 통과하여 조금만 더 가면 충청도가 나타나니까.

엄밀히 말하면 여기가 김천의 끝은 아니지만, 여기서 충북 영동군까지는 그냥 허허벌판 시골과 오르막고개가 전부다.







영남제일문의 앞에 써 있는 비문이다.

그래.

나에게 축복을.





윤은혜와 오만석이 나온 '포도밭 그 사나이' 라는 드라마가 충북 영동에서 촬영되었었다.

김천의 서북부, 그러니 영동과 접경한 쪽에서부터 서서히 국토는 포도에 뒤덮이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포도포도포도포도포도 타령은 영동 다음 도시인 옥천을 벗어나서야 끝난다.

그러니 김천 말 - 영동 - 옥천 초 여기까지가 포도의 나와바리.













쭉 서쪽으로 뻗어있던 길이 오른쪽으로 굽으며 북행으로 변한다

미리 인터넷 지도로 확인했을 때는 여기서부터 슬금슬금 오르막이 나타나며 추풍령에 진입한다

그리고 곧 충청도에 들어간다




4번국도 위를 지나는 KTX 레일

나는 서울까지 아직 2박 3일이 남았지만, 이 길을 지나는 KTX 는 1시간 뒤면 서울에 도착한다.










KTX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표지판

절망스러울 따름이다


저 멀리서 스물스물 오르막이 보인다.

로드뷰로 확인했을 때도 여기서부터 오르막이 대충 시작된다.







두둥

드디어 본격적으로 독이빨을 드러낸 추풍령 고개

자전거로 더 진행할 수 없었다

끌고 걷기 시작한다.


산고갯길을 따라 좌우 펜스에 중앙분리대까지 탁 박아둔 오지

대구를 나서서 처음으로 주변에 민가 하나 안보이는 쌩 오지로 들어간다

























얼마를 걸었을까

인터넷 지도로 확인해보니 이제 추풍령은 얼마 안남았다

오르막은 끝도 없다


근데 너무 지친다

차들은 쌩쌩 달리고

누군가가 나를 치어죽이고는 그냥 길 밖 풀숲에 유기해도 난 발견안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걱정증이 좀 있다 ㅋㅋㅋㅋㅋ


나는 길 바깥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자전거를 질질 끌고가며 속도도 안나고 지겹고

인터넷을 뒤지는데 비보가 전해졌다


로빈윌리엄스 사망. 자살로 추정됨.



불세출의 코미디언이었다.


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친구들은 '미세스 다웃파이어' 라는 코미디 영화를 알거다.

대충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혼하고 양육권까지 모두 넘겨준 아빠 (로빈 윌리엄스) 는 가족들이 너무 보고싶어서

할머니로 변장을 하고 전부인네 가족들의 가정부로 들어간다.

그 와중 생기는 각종 에피소드들이 영화의 내용이다.

물론 헐리웃 가족영화답게 전부인은 재혼하려 하고, 아빠와 아이들은 은근 방해를 한다.

페어런트 트랩과 비슷.




이 영화 이외에도

어른이 된 피터팬으로 등장하는 '후크'


무려 20세기 느와르의 시초이자 정점이자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인 '대부'의 감독 프란시스 코폴라가 만든 조로증을 소재로 한 영화인 '잭' 등을 추천한다. (대부와 전혀 다른 영화다. 놀라울 정도로. 민요와 테크노 정도의 차이)


Rest in peace.















드디어 경상북도를 벗어나고 충청도에 도달했다.





김천에서 출발한 지 2시간만에 충청도에 온거다.

어제 오후 1시 정도에 출발했으니 하루가 안되어 경상도를 벗어났다.












궁금증이 일었다.

추풍령이 있는 영동은 충청도.

내 등 뒤에 펼쳐진 김천은 경상도.


익히 우리는 경상도 말투와 충청도 말투가 다름을 잘 알고 있다.



영동과 김천 경계에는 마을이 각각 하나씩 있다.

두 마을의 거리는 불과 몇백미터.

그냥 한동네나 다름없다.


영동은 추풍령 마을.

김천은 광천 마을.



그렇다면 두 마을 사람들의 말투는 경상도 말투와 충청도 말투로 상이할까?




궁금했다.

내가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어볼 순 없어서 인터넷 찬스를 썼다.


추풍령 사람들 말투에 경상도색이 많이 묻어있댄다.



원래 충청북도 쪽이 충청남도 쪽보다는 사투리가 덜하다고 알고있다. 

충주를 위시한 경기도 접경 사람들 말투는 그냥 경기도 말투였다.

나중에 보니 추풍령 사람들은 경상도 말투를 쓸 수 밖에 없겠다 싶었던 게

추풍령이 영동의 인구밀집지역인 읍내와 어마무지하게 멀더라. 차라리 김천쪽이라고 보는게 낫겠드만.












추풍령 표지석?

사진 좀 찍었다.


덩치가 좋은 어떤 아저씨도 오토바이로 전국여행 중인가 이 앞에서 오토바이 세워놓고 사진 찍더라.

그 아저씨도 어딘가에 여행의 썰을 풀어놓겠지.


사진 한방 부탁하길래 찍어주었다.


여행중이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냥 대화 길어질까봐 치웠다.

낯선 사람하고 말 길게 하는것도 그닥 좋아하지도 않고.

타인에게 호기심을 지닌 오지라퍼로 보이고싶지도 않았고 ㅋㅋㅋㅋㅋㅋㅋ

성격 삐딱한게 여과없이 드러나는 여행 ㅋㅋㅋ






배도 고프고 해서 4번국도를 이탈하여 추풍령 마을로 들어갔다

밥이나 먹고 가던길 마저 가야지





그냥 그런 시골마을







김천에서 추풍령으로 들어오는 버스






추풍령에서 영동가는 버스







경상북도 소재 시내버스와 충청북도 소재 시내버스가 한 터미널을 사용하고 있다.


대구에서 250번 버스를 타면 경상북도 칠곡군까지 간다.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또 몇번몇번을 타면 구미까지 간다.

구미에서 또 김천 오는 버스를 탈 수 있다.

김천에서 또 뭐를 타면 추풍령까지 온다.

추풍령에서 버스를 타면 영동까지 간다.


시내버스로만 전국을 종단할 수 있다. 그런 컨셉의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고.

뭐. 난 자전거로 한다. (사실 버스여행이 시간 더 걸린다. 환승시간 텀이 극악이라)







추풍령 터미날










농협 창고 벽에서 비보잉을 하는 상모를 보았다












추풍령 역이다.

구름도 쉬고가고 바람도 자고가는 추풍령 역은 경부선에 위치한 역 중 가장 해발고도가 높다.

227미터.

한국에서 제일 높은 건 아니고 경부선에서 제일 높다.

한국 최고 높이의 역은 태백선의 추전역.


무려 855미터이다.











대구를 보니 반갑다

왜 대구패션일까











짜장면집에 가서 짜장면 하나 시켰다.

어디서 읽었는데 마라토너들은 마라톤 전날 짜장면을 먹는다던가.

탄수화물이 풍부하고 뭐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운동원이 되는 글리코겐이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일단 짜장면을 먹었다.


곱배기를 시켰는데. 양이 넘 많았다.

일부러 곱배기를 시켰는데 남길 순 없고.

들입다 들이붓는데 너무 배가 부르다.


중간에 몇번 쉬고 꾸역꾸역 먹고. 또 쉬고. 아 도저히 못먹겠다.

그래도 지금 먹으면 또 언제 뭘 먹을수 있을까.

아 그래도 못먹겠다 너무 많다.


남기고 나왔다.


웃긴게 다른 자전거 여행꾼들 블로그 읽으면 당 떨어질까봐 초코바를 수시로 먹고 비상식량을 목숨처럼 챙기던데

나는 아침에 한끼 먹으면 목적지 도착할 때까지 배가 고프지가 않더라.

그래서 아침에 한끼 먹고 도착해서 한끼 먹고. 늘 이렇게 여행했다.


몸에 돼지처럼 곳곳에 기름이 끼어있으니 그런거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인간 낙타다

인간 낙타



짜장면 먹고 길을 나선다

아직 갈길은 80킬로는 남았겠다

아 미치겠다


나선 시간은 오전 10시 40분 즈음.


후루루루룰

추풍령 오르막 적금 만기로 내리막 연금을 받아먹기 시작하는 중인데

반대편 차선에 자전거 여행꾼들이 보인다.

자전거 여행꾼을 마주친 적은 처음이다.

저들은 하행 중이네. 지금 오르막의 막바지를 오르고 있다.

추풍령에서 오르막 꼭대기를 찍고 김천까지 꿀내리막을 내려가겠지. 힘내쇼 얼마 안남았수다.


난 스르르르르르 내려가다 만다.


김천에서 추풍령 방면은 급오르막인데

추풍령에서부터 영동까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다.


왜관에서 김천 때랑 마찬가지다.

오르막 적금 부을 땐 개고생인데 내리막 연금 받아먹을땐 찔끔찔끔이다

아 이거 일시불로 훅 좀 땡겨주지


물한모금 하려고 자전거를 세웠다.

근데 어?


자전거 후레시가 없다.

어디서 빠졌지?


짜장면 먹을 때 자전거를 반점 밖에 세워뒀는데

그때 누가 빼갔나?

언제부터 없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하는건 아니다.

오천원도 안줬지싶다.

근데 야간라이딩이 불가능해졌다.

오천원짜리 싸구려 후레시로 야간라이딩을 할 생각따위도 없었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제 야간라이딩은, - '불가피하면 할수도 있겠다' 가 아니라 '절대 하면 안된다' - 가 되었다


자 가자

영동으로










김천과 영동 사이에는 자전거 여행꾼들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 두 스팟이 있다.


그 중 하나인 애교리다.

자전거 타고 오가는 사람들 블로그엔 무조건 있다.


애교가 가장 많은 마을이란 뻔한 드립과 함께.









Feel so good.










허허허허










황간으로 들어왔다

무궁화호 타고 경부선 오가는 사람들은 몇번 들어봤을꺼다.


황간.



서울대전대구부산


요런 대도시들 말고

그냥 좀 애매하게 듣도보도 못한 도시인데 꼭 서는 역이 있다

오묘한 존재감


나의 경우에는 황간역이나 약목역이 좀 그런 느낌이다

황간역의 경우는 간이역이 아니라 보통역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영동 군내와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렇다고 하네.



암튼 그래서 황간은 뭔가 친숙하다.



사진으로는 다 안담기는데 당연히.

스마트폰의 광각 카메라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는데 있어서는 눈보다 열등하니까.


저 산이 아주 멋드러졌다.


인터넷 검색해보니 산 이름이 주행봉?


뭐 그렇다네. 아주 멋졌다. 크고 아름다웠다.









낯도 좀 씻고 화장실도 사용하고

그리고 친숙한 황간역 한번 보고도 싶고

그래서 황간역에 갔다


뭔가 아주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왜일까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는 역이었다



방금 글쓰며 알아보니

황간역장님이 철도동호회 회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황간역을 꾸미고 가꾸는 데 아주 정성이 많으시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온라인에 올리기도 하고

주변 인구도 여객수요도 적은 역인데도 외부에서 음악회 같은 행사들도 자주 초청하시고

아주 직업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분 같다


본받아야지



그래서 40일 전에 느낀 그 역에서의 따뜻했던 기분이

아직도 느껴지는가보다.










김천과 영동 사이에 존재하는 두 포토스팟 중 하나인 노근리가 가까워온다

노근리가 가까워오는 것은 영동 군내와도 가까워진다는 것







포스팅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다

둘로 나눠야지




노근리가 머지않았다.................................







(2일차 여행의 전반부)


,

일단 음악 하나 들으며 시작하자


전제덕 - 바람 (클릭하면 새창에서 유튜브 뜸)


여행 갈 때는 이 노래가 참 듣기 좋다

바람이 된 느낌이다



첫째날 여행기 시작한다






출발해야 하는 날 아침이다

막상 그날이 닥치니 겁이 났다


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일주일동안 가게를 비우는 것이 맞는 것일까..

동료도 없이 혼자 가능할까.

귀찮아 죽겠네 괜히 한다고 해서


별의 별 생각으로 선뜻 출발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은 밝았고 나는 이미 출근을 안했고 해는 중천으로 떠서 날은 점점 더워지고


결심했다




가지말자. 가봤자 무슨 고생이야.

그런거는 혈기왕성한 애들이나 하는거지. 내가 이 나이에 뭔 영화를 보겠다고.

치워라 안갈란다.


나는 드러누워서 리모컨을 손에 들고 티비 소리를 높였다.











..............





(여행기는 이렇게 끝)









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나는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올려두고 있었다


출발

이 때가 오후 12시 30분이 좀 넘은 시간이었을거다 아마


때는 8월 초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고 땡볕은 송곳처럼 피부를 찔러댈 때다

나는 가장 더운 대구에서 점점 덜 더운 위로 올라가긴 할테지만

남쪽의 햇볕을 뒷통수에 달고 북쪽으로 올라가겠지만

그래도 타고싶진 않았다 더 늙어 쭈글쭈글 쳐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온몸을 아랍여성처럼 칭칭 휘감았다


생각보다 덥단 느낌은 안들었다

자꾸 흘러내리던 싸구려 선글라스는 이내 벗어던졌지만







카페인이 든 운동보조제를 두알 먹었는데

딴거땜에 먹은건 아니고 원래 운동다닐때 먹던건데

힘 좀 내려고 먹었다. 이거 먹으면 뭔가 좀 덜 지친다 해야하나.


근데 오랜만에 먹었더니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다


안그래도 먼길 앞두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약빨까지 더해지니 심장이 너무 쿵쾅거린다

셀카봉을 든 손이 흔들흔들 부들부들


사진봐라 벌써부터 땀나는거 봐라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려서 출발을 선언하고 페달을 밟았다

드디어 출발



대구 지리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내가 출발한 대구 달서구 신당동은 대구의 가장 서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3~4킬로만 가면 대구를 벗어나서 경북 칠곡이나 경북 고령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위치다

그러므로 나는 집에서 나서자마자 대구를 벗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서며 집 앞의 좀 낙차있는 턱을 자전거로 퉁 내려갔는데

자전거가 덜컥 하는 순간 거치대가 붙잡고 있던 아이패드가 분리가 되며 하늘로 솟구쳤다

나는 번개같은 솜씨로 하늘에 뜬 아이패드를 잡았다

내가 떨어지는 물건같은거 되게 잘 잡는다.

발군의 반사신경을 자랑함 ㅋㅋ (권투배워서 그런듯. 그래봤자 몇달이 전부)


아..

출발하자마자 본연의 역할을 잊고 실책을 범하는 아이패드 거치대

뭔가 불안했다


앞으로 인도턱은 좀 조심해야겠다





집에서 나서서 경북 칠곡을 향한다

동네 길이라 아직은 아무런 실감도 안난다

이렇게 한바퀴 휙 돌고 다시 돌아올 것만 같다








15분여 달렸더니 대구에서 칠곡으로 나가는 작은 다리가 나왔다



다리의 이름은 용산교

내가 서 있는 곳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이 다리 건너는 경상북도 칠곡군


다리를 건너면 여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거다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가다보면 나오는 지천역

상행방면으로 대구역을 지나서 첫 역이다

2004년까진가는 사람을 태웠다는데 그냥 지금은 지나가는 역이다


경상북도긴 하지만 대구 성서, 서재나 칠곡에서 별로 멀지도 않고

나도 아침운동 삼아서 여기까지 걸어온 적도 있으므로 뭐 아직까지는 걍 별 느낌 없다

그렇지만 여기를 지나면 나도 처음가는 길들이다

자동차로는 몇번 가 봤지만


역 위의 무지개가 참 아름다웠다









역시 지천역을 지나고 바로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어디로 나가야 4번국도를 만나는거지


좀 빙빙 돌며 거리낭비 하다가 제대로 된 길을 찾았다


지천역을 지나고 만나는 국도는 4번 국도다





우리나라 국도체계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홀수 번호로 된 국도는 국토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는 세로 국도이고

짝수 번호로 된 국도는 국토를 동에서 서로 관통하는 가로 국도이다


4번 국도는 전북 군산에서 경북 포항까지, 남한 중남부를 동서로 관통하는 국도이다

보면 알겠지만 나는 대구에서 대전까지 4번 국도만을 이용하면 별다른 시행착오 없이 갈 수 있다

대전시내에서 4번국도를 이탈하여 1번국도를 찾은 뒤 그대로 북으로 진격하면 서울에 도착할 수 있다

여행의 전반부는 동에서 서로, 여행의 후반부는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ㄴ자 모양의 루트이다.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는 4번국도와 1번국도와 거의 나란히 진행되는 철로, 고속도로이다



도시밖 국도로 진입하니 이건 뭐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중앙분리대 있고 차는 쌩쌩 80킬로 이상의 속도로 후려친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나도 속도를 내고 마구 질러야 될 때가 온거다

그래봤자 시속 10킬로지만


두렵다

무섭다

자동차들이 왠지 나를 밟아 뭉개고 지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쉬이이이이애애애애애애애애애왱~


뒷쪽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는 왼쪽 귀를 짝 후려친 뒤 앞으로 멀어진다

가다보면 익숙해지겠지


내가 할 수 있는건 안전하게 도로 바깥쪽으로 바짝 붙어서 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근데 문제는 도로 가장 바깥쪽은 바닥에 이물질이 너무너무너무너무 많다는거다

부서진 차유리, 헤드램프 파편부터 각종 철사와 볼트, 뾰족한 자갈 등등


자동차가 붕붕 달려대는 도로 복판에는 풍압 때문인지 이물질이 거의 없는데

아마 그곳의 이물질들이 모조리 도로 가장자리로 밀려난 것 같다

펑크를 조심해야 된다. 적어도 이런 외진 곳에서 펑크가 나면 심히 곤란해진다.


계속 밑을 보며 지그재그지그재그로 좀 크다싶은 건더기(!) 들은 피해다니고 있었다

육체피로도에 이어 멘탈피로도 게이지가 쭈우우우욱 올라온다



한시간쯤 달렸더니 드디어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대

바로바로 오르막이 나왔다

몇백미터는 되어 보인다

땀 좀 제대로 뺄 시간이 온거다








자전거를 타고 쉭쉭쉭쉭 오르막을 거침없이 돌파........

하려 했지만 얼마 못가 통증이 스멀스멀 장악하는 무릎 바로 위 안쪽 허벅지

점점 느려지는 자전거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한다

앞으로도 이런 오르막은 수없이 나타날테지


무리하지말자. 1킬로면 자전거로는 5분, 걸어가면 15분이다.

자전거로 못올라갈 경사높은 오르막이 앞으로 많아봤자 몇개일거며, 제까짓게 길어봤자 1킬로야 되겠나

10분 빨리간다고 달라질거 없다 그 힘을 아껴서 평지에서 좀 더 밟자


그렇게 오르막을 올라가는데 저 앞에 몇백미터 앞에 누군가가 있다

저 사람도 자전거타고 서울 가나보다. 

시골 한복판 4번국도변에 있는 사람이 동네 나들이 나온 사람일 리는 없을테고.

어.. 근데 자전거가 없다.


헐..










그렇다

그 용자는 인라인을 타고 그 오르막을 오르고 있었다




대구에서 나온 뒤로는 그냥 계속 시골이었다

그 말인즉슨 저 사람은 최소 대구에서 인라인을 타고 출발한 사람이다

그 사이에 마을이 없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나왔을거란 생각은 안들었다


놀랍다 경이롭다


인라인 용자는 내 몇백미터 앞에서 헐떡헐떡 오르막을 오르다 지쳤는지 길 가장자리에 털퍼덕 주저앉는다

나는 부지런히 오르막을 오르고 있었다


앉아서 쉬던 인라인 용자는 뒤따라오는 날 발견하고는 다시 일어서더니 기진맥진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어색하다

아마 어색할거다

그냥 모른척 스윽 지나가기에는 너무 좁은 국도갓길

아는척 하기에는 우리가 언제 봤다고? 차라리 둘 중 한쪽이 어르신이면 몰라도

나 역시 살짝 난처하던 참이었다

아마 그도 그랬겠지

소심한 인간들은 원래 별의 별 것을 다 신경쓴다

바로 나같은 인간

그리고 그같은 인간


저 앞의 인라인 용자는 오르막의 끝을 타넘어 다리부터 종아리 허리 어깨 머리 서서히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는다



자전거를 끌고가기에는 오르막이 너무 길고 경사도 좀 줄어든 느낌이다

난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는다





나도 오르막의 정상에 도달했다

오르막은 정직하다

개고생 뒤엔 언제나 내리막이다

중력이 당겨주고 바람이 부채질해주는 꿀같은 내리막이 저멀리 펼쳐져있다

인라인 용자도 고생끝에 찾아온 오르막 적금 만기로 타먹은 내리막을 만끽하며 다운힐 중이다

나도 바람을 맞으며 쇄애애애액 내리막을 내려간다

인라인 용자를 스쳐지나 주우우우우우우우욱 내려갔더니 식당 몇개와 마을이 나타났다

내리막에서 편하게 내려왔지만 첫 오르막 구간을 오르며 체력을 소비했다

난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서 물을 꺼내 들이키며 생각해본다





여태까지 한시간 좀 넘게 걸렸고, 가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그 시간이 한시간 좀 넘으니까.

집에서 가게까지 14킬로. 지금 여기는 우리집에서 우리 가게 정도 거리겠네.

(방금 글쓰며 지도로 거리 재어보니 딱 14킬로)

아 졸라 많이 온거같은데 그것밖에 못왔나.




근데도 너무 힘드네. 모르는 길이라 그런가.

미치겠네. 하기싫어죽겠네.

아 그만두고싶다.

그만둘까.





하지만 그만 둘 수 없었다.

이미 떠난다고 여기저기 다 떠벌여놨는데, 그리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내가 포기할거라 단언했는데.

출발한 지 한시간만에 포기하다니. 말도 안된다.

근데 한시간밖에 안왔는데도 이렇게 힘든거 보면 앞으로는 장난 아니겠지.


출발한 지 한시간만에 나는 크게 후회를 하고 있었다

사방팔방 너무 떠벌여놓은 내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근데 또 생각을 달리해보니.



아니지.

가게에서 집까지 14킬로. 맨날 자전거로 퇴근은 쉽게쉽게 슉슉 했잖아.

대구에서 서울까지 전체 350킬로. 오늘 목표거리 55킬로.

서울까지 350킬로라고 해봤자 뭐 집에서 가게까지 12번 왕복밖에 안되네.

55킬로면 집에서 가게까지 두번 왕복하는 것 밖에 안되네. 한번 왔으니. 한번 반 남았네. 별거 아니네.


시바. 별거 아니네. 가자!


난 모르고 있었다.

퇴근은 언제나 시원한 밤이었고 매일 다녀서 편하고 안전한 길이라는 걸.

무엇보다도

처음의 10킬로보다 다음의 10킬로는 더 힘들고, 그 다음의 10킬로는 더더 힘들다는걸.



그냥 막 달린다

아직 대구에서 나서서 시골마을 몇킬로 달린 게 다다

왜관까지도 못갔다




사진도 별로 안찍었고 루트도 짧아서 딱히 쓸 얘기는 없다

그래도 이렇게 죽죽 늘여 쓰는 이유는

최대한 디테일한 당시의 감정과 여행 중 주의사항, 막연히 준비할때는 간과하기 쉬운 사실들을 좀 자세히 써서

내 뒤로 여행을 떠날 그 누군가들이 혹 내 블로그를 참고하게 되면

최대한 많은 사전준비를 할 수 있고 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세히 쓴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로드뷰 사진을 첨부하겠다


단, 나는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상행 여행이다.

대부분의 여행객 그대들은 서울에서 출발하는 하행이므로

내가 지옥일 때 그대는 천국, 내가 천국일 때 그대는 지옥이다




지루한 국도를 지나 이제 슬슬 뭔가 나타난다

왜관 공단삼거리


내 친동생의 직장이 있는 곳이다

난 고작 내 동생이 매일 출퇴근하는 회사도 못와서 기진맥진대고 있었던거다

뭐 내 동생은 차타고 다니지만. 그래도 아무튼 친가족의 생활권도 아직 못벗어나고 찡찡댔던거




이 공단은 내가 여행을 다녀오고 얼마 뒤 염산가스가 누출되어 30여명이 부상당하고 떠들썩했다

또 그저껜가 또 딴데서 뭐 유출되고

어젯밤엔 안양 페인트공장에서 또 뭐 유출되고

서양에선 연예인의 누드사진도 유출되고

한쿡에선 월드스타의 음담패설도 유출협박 당하고


유출 유출




공단삼거리를 지나면 칠곡군에 소재한 미군부대가 나타난다

캠프캐롤

바로 위에 염산유출유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예전에 요 캠프캐롤에서 고엽제, 일명 '에이전트 오렌지' 를 몰래 매립했다고

전역자들이 양심선언을 해서 땅파고 조사하고 뭐 그랬다고 한다. 조사결과 별거는 안나왔다지만.

완전 영화 괴물이랑 똑같은 내용이네

그럼 이건 낙동강에서 괴물이 나오나

근데 영화 괴물에서 괴물을 조지는 약품의 이름이 '에이전트 옐로' 다. 에이전트 오렌지에서 따온 이름.

그러므로 괴물 죽이는 약을 몰래 뿌려서 괴물이 나오나마나


정신이 혼미하다




캠프캐롤 앞을 지나는데

퉁!

인도턱을 밟았다

자전거 여행에서 인도턱은 지뢰나 다름없다

여행의 후반부로 갈수록 엉덩이 통증은 어마어마해진다

다른 자전거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스트라이다는 엉덩이를 아주 죽인다


나야 아직 여행의 초반이다

그러므로 인도턱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거치대의 아이패드


퉁!


아이패드는 또 공중으로 솟구쳤다

나는 무의식중에 양손을 놓고 공중에 떠 있는 아이패드를 미식축구선수 롱패스받듯 훅 낚아채 가슴에 끌어안았다

당연히 자전거는 자빠지고 나는 치이이이이이익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나뒹굴렀다


350킬로 여정

역사적 첫번째 자빠링의 순간이다



땅에 부딪혀서 갈린 골반옆이 쓰라리다

오마이갓


그 와중 아이패드를 본다

살아남았다

조자룡 품에 안긴 아두처럼 아무런 상채기 하나 없다

이제 내 몸을 살필 차례다

오 마이 갓

아무렇지도 않다

옷이 찢어져 너덜너덜 할 줄 알았는데 옷도 아무런 이상도 없고

흙도 하나 안묻었다

이건 꿈인가


기적이다 생각하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이윽고 나타난 왜관역





대구역에서 기차타면 한 20분 걸리나

더군다나 대구역은 우리집보다도 한참 뒤다

이게 뭔 삽질이야


아직도 난 혼란스러웠다

이짓을 왜 하는가


뭔가 굉장히 낭만적이고 여유롭고 뭐 그럴 줄 알았는데

걍 덥고 짜증만 났다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지체할 시간은 없다

왜관역 앞 편의점에서 얼음물 원플러스 원인가 투플러스 원인가

아무튼 꽝꽝 언 얼음물 몇통을 사서 가방에 넣고 다시 길을 간다






왜관의 모습

걍 시골동네다


왜관 정류장에는 대구로 들어가는 교통카드 찍고 타는 버스들이 있다

아직까지도 대구와 간선버스가 직통으로 연결되는 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시말해 아직도 대구생활권








왜관역을 지나면 낙동강이 나온다


이 곳이 바로 한국전 최고 격전지인 낙동강 전선이다

북한은 끝끝내 이 강을 건너오지 못했고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낙동강에서 이 다리를 건널때마다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많은 분들께 감사하자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변에도 자전거 도로는 잘 깔려있다

(강물은 똥물이 되고 물난리가 나고 있다지만 자전거 도로에 한정해서 말이다)


이 길 따라 가면 대구가 나온다

평평하고 좋은 길이다

난 예전에 이 길을 통해 구미에서 대구까지 자전거 타고 몇차례 간 적이 있다

그러니 지금껏 덥니 힘드니 어쩌니 해도 난 이곳에, 아니 더 먼거리를 자전거로 몇차례 온 적이 있단거다

단지 오늘은 초행의 국도와 오르막을 따라왔기 때문에 멘붕을 좀 겪은 것 뿐


그리고 같은 거리라도 아는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는 것과

모르는길, 집에서 나서는 길을 가는 건 천지 차이다



모든 육체활동에서 멘탈의 역할은 굉장히 크다

스파링 3분과 실전 3분의 체력 소모차이가 다르

긴장하면 체력은 두배로 빨리 소모된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 하는거다


먼거리 여행을 떠날 땐 긴장을 풀고 가자

그게 내가 풀자 그런다고 오냐! 풀자! 하며 풀어지는 건 아니지만






낙동강이다

크고 아름답다










낙동강을 건넜다

이제 4번국도 따라 쭉 그냥 직진하면 김천이다

차타고 몇번 지나다닌 적 있는 길인데

걍 졸라 재미없는 길 예상된다

계속 시골마을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기서 조금 더 가서 약목역을 지나면

그 뒤 어딘가서부터 김천 시 경계까지 계속 오르막

그 뒤부터 대체로 내리막을 중심으로 한 오르막 내리막 반복이었을거다




하지만 왜관을 찍고 오늘 여정의 거의 절반은 온거다

걍 이젠 쭉쭉 가기만 하면 되는거다





근데 문제가 발생했다








왜관시내 들어서서 좀 여유부린다고 천천히 몰았을 땐 몰랐는데

맘먹고 자전거 안장위에서 양발 힘 딱 줬더니

오른쪽 종아리가 땡 하며 뭉치고 급격한 근육통이 순간적으로 훅 밀려온다


놀라서 힘을 푸니 고통이 스륵 물러간다


쥐가 난거다

완전 쥐가 난건 아닌데 종아리에 살짝 기미를 남겨두고 있다

혹시나 해서 다시 힘을 주니 아프다

힘을 풀면 괜찮다


릴랙스

릴랙스

아직 갈길이 멀어 릴랙스


나는 자전거 위에서 종아리를 좀 주무르며 다리의 긴장을 풀어줬다

이제 괜찮겠지

다리에 힘을 살짝 줘 보았다

으악


안되겠다



릴랙스 릴랙스 캄 다운

괜찮아 이정도 예상못한거 아니잖아

살살 타 살살

아직 갈길 멀어 너무 긴장하지마




나는 자전거를 살살살살 몰기 시작했다

되도록 멀쩡한 왼발은 힘차게 밟고

오른발로 밟을 땐 살살

자 자 옳지 잘간다


2기통 엔진 우익의 엔진이 고장난 구형 전투기는 비틀비틀 목적지까지 날아간다

엔진을 멈추는 순간 추락이다

멈출순 없다


살살살살살살




으악





안된다

종아리 근육은 약 20분 간격으로 한번씩 훅훅 졸라 땡땡하게 해삼처럼 오돌오돌 굳으며 고통을 준다





안되겠다

난 시골마을 앞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담배를 한대 꺼내물고는 전화기를 꺼내든다

내가 전화한 곳은....






119 뭐 이런건 아니고.





가게가 신경쓰여서

쉬는 김에 거래처에 재료 발주하고, 밀린 대금 폰뱅킹으로 정산해주고

알바생 월급 줄 돈도 미리 다른 놈들이 자동이체로 빨아가기 전에 다른 통장으로 옮겨놓고

자전거 타고가다 느닷없이 거래처 정산해주고 통장정리 하는 사장님.


출발하기 전에 했어야 했는데

사정이 좀 있어서 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느닷없이 일 좀 하면서 한시간 가까이 쉬었다








일을 끝내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약목





이 무거운 육신을 태우고 가느라 니가 고생이 많다








금오산이다


칠곡 김천 구미 경계에 있다









약목 지나자

드디어 내가 우려했던

여행가기 전부터 우려한 그 오르막이 나온다

몇킬로짜리다







아 모르겠다

나는 안되겠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올라간다

계속 끌고 올라간다

여기선 얼마나 오랜시간 걸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걷기만 했다

어거지로 타면 탈 수 있는 경사인데 힘이 빠질대로 빠진데다 다리 컨디션도 정상은 아니라서 그냥 걸었다






김천시 경계에 도달했다

오늘 김천에서 1박 할 예정이었으므로 일단은 목적지에 거의 다 오.... 긴 개뿔

김천시 경계에서 김천 시내까지는 네이버 지도로 19킬로미터

거의 20킬로미터다



이제 2/3 온거다


김천시 경계부터는 오르막 내리막의 반복이다

꾸준히 몇킬로를 오르막을 올라온 뒤라 한고비 넘어서면 몇킬로동안 오르막을 내려가며 줄줄 빨겠지...

라고 생각한거랑 다르게 계속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다

올라간 만큼은 내려온다는 게 진리이니 뭐 오르막에 비해 내리막이 좀 더 길긴 길지만

찔끔찔끔이다.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다.



더 웃긴건.


사람이 오르막을 계속 오르다보면 약간 착시가 오는데.

약한 경사의 경우에는 이게 오르막인가 내리막인가 감이 안온다.

난 분명 내리막이라 생각하고 페달을 두세번 밟고 가만히 있는데 자전거가 몇미터 쭈르르르 가다 멈춘다


어? 이상하다. 왜이러지...?


몇번을 해도 그렇다.



그 때  도로가를 따라서 흐르는 내 옆의 물줄기 하나

산에서부터 쫄쫄 내려온 물이다


물은 나를 스쳐지나가 내 뒤쪽 방향을 향해 흐르고 있다



몇번을 내리막인지 오르막인지 헷갈리는 고갯길을 넘고

나는 힘이 빠질대로 빠져서 기진맥진해서 행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이탓이야 운동부족이야 준비부족이야 무더위야


나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별거아닌 이 정도 거리에, 이렇게 몸과 마음 탈탈 털린 이유를 계속 찾고 있었다

이 정도 거리를 안몰아 본 것도 아니다

이 정도까진 아니라도 도시에서 도시간 이동이나, 시내주행 30~40킬로씩은 꽤 자주 했다

자전거 좀 탄다치고 그정도 안타는 사람은 어디있을까. 나야 미니벨로이긴 하지만.



그만큼 익숙치 않은 길이나 초행길의 긴장감과 낯설음은 사람을 잡는다.


여러분들도 평소에 운동삼아 동네 한두바퀴 걷는 거리를 인터넷 지도로 재어보시라.

그리고 그 거리만큼 길 따라 직선으로 이동했을때 어디까지 갈 수 있나 검색해보면 꽤 놀랄거다.



대구 기준으로 치면 성서에서 동네 두어바퀴 빙빙 돈 거리를 지도에서 펴면 제법 시내 근처까지 간다.




김천구미역이다


이제 진짜 김천 다 와간다

헥헥헥헥


낙타등 구간은 끝나고 이제

지루할 정도의 평지가 계속된다




엉덩이도 아프고

만신창이다



생각보다 오래걸려서

김천에서 만나기로 한 현지서포터(!)와 미리 약속한 시간도 훌쩍 넘겼다

뭐 어쩌라고 내가 힘든데

죽겠는데









김천시내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십분 뒤 도착한다고 해놓고도 한참 더 걸렸다




김천 현장서포터라 쓰고 아는동생 or 부하 라고 읽는 박원장을 만나서 술을 퍼먹으러 갔다

애초에 전국 곳곳 1박하는 곳의 지인들을 불러 밤마다 술판을 벌일 생각이었다

그 낙이라도 있어야지

다행히 나는 숙취 같은게 없다. 술을 적게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구 한짝식 들이붓는 말술도 아니다.

전날 마신 술로 다음날 스케줄을 어그러뜨리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서포터 접선장소였던 골목에 있던 오묘한 이름의 슈퍼

뭐야





서포터와 잠시 접선을 마친 뒤

서포터는 아직 퇴근까지 시간이 남아있었으므로 난 자전거를 서포터의 직장에 세워두고 겜방에 갔다

여행 코스 좀 점검해 보려고

아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겜방으로 가는 길

노점에서 복숭아 파는 아주머니가 날 불러세웠다

"학생! 이것 좀 도와줘!"

아줌마도 퇴근

복숭아 박스들 좀 차에 실어달라는 부탁

몸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학생' '학생' '학생'

아 신이 나서 번쩍번쩍 들어서 다 옮겨드리고 복숭아 두개 얻어서 양손에 들고 겜방에 갔다












술마시러 갔다

고깃집 갔다가 호프집 갔다가 숙소로 와서 더 퍼먹고

총 3차동안 그냥 들이부었다

하루종일 자전거를 탔더니 상큼하게 술이 쭉쭉 들어간다


















그리고는 나는 술주정인지 진심인지 모를 단 네글자를 남겨두고는 잠이 들었다















1일차. 대구 - 김천 여행기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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