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간을 지나고부터 지독한 피로감과 컨디션 난조가 몰아닥쳤다

갈길은 멀고 땡볕아래 몇시간째 자전거를 달려대는데다가 우겨넣은 짜장면은 뱃속에서 트위스트를 추고


...............


노근리까지 가면 영동은 금방이다


빨리 가자







황간을 지나고 반짝 오르막이 좀 있었으나 그걸 지나고부터는 평탄한 내리막과 평지가 반복된다

추풍령 오르막 개고생의 연금을 이제야 좀 타먹는 기분이다


허나 속도를 마구 낼 순 없다

다친다... 아니 잘못하면 죽는다.

머리 터진다.

조심해야된다


작년에 자전거로 음주운전(!) 하다가 팔 부러뜨린 적이 있어서.

자전거로 집에 귀가하다 술약속이 생겨서 술을 먹고 집 앞 몇백미터 타고 올라가다 팔을 작살낸 적이 있다.

어떻게 자빠진지도 모른다. 다음날 되니 손이 발만큼 두꺼워져 있었고, 병원을 가니 팔꿈치가 골절되었다고 했다.


조심해야된다.













자전거 국토 종단 선배(?) 들의 블로그를 통해 사진으로 수없이 보던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노근리다.













6.25 때 미군이 노근리 피난민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가슴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미군은 노근리 피난민 중에 간첩이 섞여있다 판단하여 그랬다고 읽었는데.

아무튼 오판으로 인해 억울한 민간인들이 수백명 사망했다.


사진에 보이는 저 두 터널. 쌍굴이라고 했는데 저 터널에다 기관총을 난사했다 한다.

콘크리트 벽면의 페인트 표시가 총알 탄착지다.


자세한 사건의 경위는 각자 검색하시길.


나의 여행기에 집중하자.

내가 지금 글을 쓰는 가게 컴퓨터는 무척 느리기 때문에 내가 친절히 링크를 첨부할 정신이 없다.



애교리가 좀 유쾌한 의미로의 포토스팟이라면, 노근리 이곳은 좀 안타까운 현장이다.

아무튼 이 곳은 모든 자전거 여행꾼들의 블로그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될 만큼 다 나오는 곳이고.

그들 모두는 영동을 벗어나자마자 노근리를 맞닥뜨렸다고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었다.

하행인 그들과 달리 난 상행여정 중이므로 이제 노근리를 지나면 곧 영동 군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노근리 현장 앞 벤치 그늘에 앉아서 담배한대 태우고

사건현장 방명록도 작성하고 물도 좀 마시고

페이스북에 노근리까지 도착했단 글도 쓰고.

뭐 그러며 시간을 좀 보냈다.


컨디션이 그닥 좋지는 않다.










노근리까지 와서야 대구로부터 100킬로 밖으로 벗어났다

하루동안 고작 이것밖에 못왔나


그래도 대구를 100킬로나 벗어난 게 어딘가


하지만 우리집은 대구 최고 외곽이므로

난 아직 자전거로 100킬로를 이동하지 못했다 판단된다






또 헐

이런 과묵한 자전거 여행 블로거들 같으니

아직 영동은 10킬로가 넘게 남았다

10킬로면 내 스트라이다로 한시간이다


그들은 영동 벗어나고 사진찍기 귀찮고 빡쎄서 영동군내와 노근리를 그냥 대충 뭉뚱그린거다

노근리에서도 영동은 아직 한참이다

그래도 내 출퇴근 거리라 생각하면 맘이 편하다

그정도 쯤이야








이제 진짜 레알이다

이전 글에서 말했지만 영동은 포도로 유명한 도시다

'와인코리아' 라는 기업이 영동군내 바로 인접지에 위치해 있다

인터넷 지도로 확인했었다


와인코리아를 지났으니 이제 진짜 영동 인접이다






영동 군내로 들어가는 곳에 위치한 멋드러진 바위

별다른 의미가 있는건 아니다

그냥 바위가 크고 아름다워서 찍어봤다






영동 군내에 도착했다

영동역이다


기차타면 영동 지나면 금방 김천이던데

나는 다섯시간이 넘게 걸렸다


추풍령이란 괴물 때문이다









영동역 앞에서 바라본 전경

걍 시골이다


출발 전 거리뷰로 익히 확인했던 터였다








시골이라 올드스쿨 간지가 풀풀풀풀 넘쳐난다











편의점에서 핫식스를 샀다

원플러스 원이라 두개를 샀다


한샷 쭉 때리고 그늘에 앉아 담배한대 피니 HP 게이지가 서서히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아직 갈길이 멀다

오늘 갈 길의 반도 못갔다





편의점 옆 길거리에서 할머니 두 분이 왁자하게 대화를 나누신다

여지없는 백퍼 충청도 말투다


아 충청도구나.....


실감이 났다.









버스 노선표를 봤다

나중에 버스로 전국일주 하는것도 한번 도전하고 싶어서 돌아다니며 대중교통들을 굉장히 유심히 봤다




근데 뭔가....

이건 뭔가.....





고자..................


헐...


고자.....




내륙 오브 내륙

전국 팔도 중 유일하게 바다한점 없는 충청북도에서 어촌이란 동네이름도 웃긴데 ㅋㅋㅋㅋ






난 이런 어정쩡한 옛날 건물 보면 사진을 찍고싶더라

디젤펑크? 폐허덕후?


영동 군내를 벗어났다.

이제 쭉 가면 옥천이다. 가자!!









국토의 70프로가 산인 대한민국.

어디가도 양 어깨는 산이다.


근데 영동을 벗어나서부터는 산이 아주 멀리에 있다.

금강변을 따라 넓은 지대가 펼쳐져 있다.

뭐 평야 정도까진 아니고, 경상도나 추풍령까지처럼 산을 길 양 옆으로 끼고 가는 정도는 아니다.


크고 아름다운 절벽을 찍었다.

절벽이나 바위 보면 사진을 꼭 찍는다.

절벽덕후다.

이상형은 글래머다.















출발하기 전에 2일차 코스 지도에 표시를 한 곳 중 하나다.

이 곳은.

내가 대구를 떠나서 금강과 처음 조우하는 곳이다.


금강은 서해로 흐른다.

내가 사는 대구의 강은 모두 남해로 흐른다.

낙동강 또는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류들이니까.


하지만 금강은 서해로 흐른다.

내 옆을 유유히 흐르는 저 물들은 서해로 가는거다.


난 여기서 금강 본류와 처음 만났지만, 추풍령에서부터 4번국도 옆을 쫄쫄 흐르는 도랑은 모두 금강과 합쳐진다.

그래 추풍령에서부터는 국도 옆에 계속 쪼끄만 도랑과 하천이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소리다.

물이 흐르기 쉬운 자리라면 길도 만들기 쉬우니까.


금강의 발원지는 전라북도다. 뭐 한군데서 발원하는건 아니지만. 발원지는 보통 하구에서 가장 먼곳인가...?

아무튼 추풍령의 도랑도 금강으로 간다.









금강의 위용

여긴 상류다


우리가 경부고속도로 달리다 보면 마주치는 휴게소 중 가장 유명한 휴게소인 금강휴게소

거기도 상류다

여긴 더 상류다

이곳을 지난 물은 굽이굽이 흘러흘러 (진짜 금강의 상류는 어마어마하게 굽이굽이 굽어있다) 옥천을 지나 대청호로 갔다가 대전을 지나 공주를 지나 금강하구둑을 군산만이 있는 서해로 빠져나간다. 그리고는 흘러흘러 인도양 태평양 중국 어디든 가겠지. 


일단 너희들이 어딜 가든간에 당분간은 나와 대전까진 함께가는거다. 자 가자.






금강을 건너고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더위를 식힌다.

부쩍 덥다.

찬물을 머리에 붓고 수건에도 붓고 목에 두른다


기진맥진하다

힘이없다


담배도 두어대 피고 물도 좀 마시고

애들하고 카톡도 좀 주고받고

그러면서 시간을 좀 보낸다


난 왜 사서 여기서 이 고생을 하는건가

다시금 내가 왜 이런짓을 한것인가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것

계속 해야된다





오늘의 목적지인 대전은 38킬로 남았다

옥천은 20킬로 남았다






벌써 20킬로를 와서 옥천에 도달했다..........

는 말도 안되는 소리고.

보통 그 도시까지의 거리는 해당 도시의 시청 군청 등의 중앙기관이 존재하는 곳까지의 거리라 알고있다.

그러니 우리집은 대구광역시에 존재하지만 대구로부터 10킬로가 넘게 떨어져있다.


아무튼 옥천에 들어섰지만

옥천까지는 20킬로 가까이 남았다.


여긴 옥천이지만 내 옥천까진 두시간을 더 가야하는 이곳은 옥천

쉽게말하면 아직 옥천과는 정식으로 만나진 못했고 그냥 썸 타는 정도 ㅋㅋㅋ





금강 옆길도 완만완만한 평지와 아주아주 약한 내리막

그냥그냥 가기 편한 길이었다


가다가 독수리로 추정되는데 아무튼 갈색깃털의 아주 큰 새가 길에 납작하게 터져있는걸 봤던 기억이 난다

거기가 여기 맞던가 아마 맞을거다

아... 여행을 마친지 한달 반이 다 되어가고 내 기억은 조금씩 서로서로 자리를 바꾸어가고







이 의미없는 풍경을 찍은 이유는 단 하나

저 산 너머에 금강휴게소가 있다

금강휴게소를 끼고 멋드러지게 드리워진 금강과 그 바로 뒤의 산

그 산의 등짝이 바로 저거다











2일차 여행지도에 금강과 함께 표시해둔 또다른 스팟


이원면


대구 - 서울 코스 중

가장 오지로 평가했던 구간이 영동 - 옥천 구간이었다.


대구에서 김천까지는 나름 잘 아는 길이고, 김천에서 영동까지는 추풍령과 황간이란 나름 큰 마을이 도보로 두시간 안에 진격 또는 후퇴 가능한 간격으로 존재.

옥천부터는 대전 세종 천안이 다닥다닥 나타나고, 천안을 넘어서면 수도권이라 그냥 계속 도시구간이다.


허나 영동에서 옥천 사이의 수십킬로미터는 그냥 허허벌판 아무것도 없이 산과 들만 있었다.

다친다거나 자전거가 박살난다거나 하면 말그대로 절단나는 구간이 바로 이 구간인 것이다.


그러나 그 영동과 옥천 사이에 유일하게 하나 위치한 마을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옥천 이원면이었다.


나는 유사시에 대비해 지도에 이원면 마을입구를 표시해 두었고

거리뷰를 통해 들어가는 길과 대충의 동네 생김을 기억해 두었다.



다행히 몸 다친곳도 없고 자전거도 짱짱하다.

이곳을 그냥 훅 통과해서 바로 옥천으로 쏠까 하다가, 여행 전 이원면을 표시해두고 거리뷰로 둘러본 김에 직접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뭔가 부농의 스멜이 느껴진다............. ㄷㄷㄷㄷㄷ








막걸리 양조장이 있었다.

술이라면 자다가도 깨는 나이기에 한컷 찰칵









시골마을 치고는 나름 번화했다

추풍령이나 황간보다 더 번화한 듯 했다


커피집도 하나 있었다

다방이 아니라 정통 커피집이었다

도대체 수요가 존재할까? 하는 직업적 궁금증이 일었다.


안을 힐끔 보니 아가씨 한명이 카운터에 있던데 들어가서 시원한 아이스아메 한잔 하려다가 갈길도 멀어 지나쳤다. 아직도 좀 후회됨. 그곳의 커피맛 정말 궁금했는데....





묘목의 고장..?



인터넷 검색찬스 써 보니

이원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묘목단지? 그렇댄다.

어쩐지 부자농촌 스멜이 나더라.


외제차 보고 느낀점도 있지만 으리으리하게 생긴 교회가 세개인가 있었거든.




이원면 들어오는 바람에 몇킬로를 더 둘러가게 생겼다.

그것도 산길로.


구불구불 산길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어차피 길은 달라도 옥천 직전에 엄청난 오르막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가나 둘러가나 오르막을 피하지는 못함.


이원면을 지나고 오르막도 지나면 옥천 군내까지는 또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나는 이 완만한 길에서 극심한 두통과 구역질, 그리고 엉덩이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엉덩이 통증이야 장거리 라이딩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거고 또 타면 탈수록 익숙해지는거지만.

나는 자전거여행 시작하기 전에는 몇달간 자전거를 방치해두고 크루져보드와 롱보드에 미쳐있었기에 궁뎅이 통증에 면역항체가 형성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작년에 생긴 면역항체는 다 사라졌고... (설마 진짜 항체가 존재한다 생각하면....)


100킬로 가까운 초장거리 라이딩에 엉덩이는 부서질 것 같고

무더위 아래에서 계속 자전거를 탔더니 두통이 올라오고 자꾸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저히 더 갈 수가 없다. 토할 것 같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옥천까지 몇킬로 안남았는데. 대전도 금방이고.....


나는 앉아서 쉬면서 여행 서포터 K에게 전화해서 더이상 못가겠다고 포기하고싶다고 징징댔다

하지만 가기싫다고 안갈수 있는가 길바닥에서 잘것도 아니고

아픈 머리 거북한 속을 부여잡고 자전거를 달렸다


옥천이 나타났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옥천에 도달했다


대전까지는 약 18킬로 남았다

대전 시청까지 18킬로니까 대전까진 대충 10킬로면 되겠지.


하지만 난 그 한시간의 여행을 갈 힘도 체력도 뭣도 없었다.

여기서 더 진격할 수 없다.


옥천에서의 숙박을 결정했다.







옥천역과 내 적토라이다









옥천역 앞의 관광안내도








옥천에서 하루 머물기로 한 내가 왜 대전에 와 있는가.....





옥천에서 숙박을 결정하였으나 옥천은 너무 작은 도시였다.

도저히 정보도 뭣도 없고, 검색하기에는 갖고있는 모바일 기기들의 배터리도 간당간당하다.

그래서 피씨방에 들어갔다.


스트라이다의 가장 좋은 점은 극강의 휴대성이다.

살포시 접으면 어디든 들고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한군데 들어가지 못한 곳이 있었다.


바로 옥천의 피씨방


피씨방 앞에서 자전거를 고이 접어서 끌고 문을 열려는데, 문밖까지 뛰어나온 피씨방 사장놈


"이걸 어딜 갖고들어와유 안되유 딴데가유"

"이거 별로 크지도 않고 나 자물쇠도 없는데 잠깐만 들어가면 안될까요?"

"안되유 안되유 딴데가유"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개를 끌고들어갔나 차를 몰고들어갔나 장사도 쥐뿔도 안되는 겜방에 캐리어가방만한 자전거 접어서 구석에 좀 놓겠다는데 문전박대를 당했다


순간 빡쳐서 전투력이 급상승하였으나 지 가게 지가 싫다는데 내가 강제로 밀고들어갈수도 없고 어쩌랴

빡친 덕분에 독이 올라 기운이 바짝 솟았다


에잇 퉤퉤


옥천에 있고싶은 맘이 싹 사라졌다

한 인간이 옥천에 대한 내 인상을 최악으로 만들어버렸다

뭐 하루종일 자전거여행 때문에 짜증도 좀 나 있던터라 더

대전 가자


옥천역에서 폰 충전 좀 하고, 대전에 있는 군대 후임에게 오늘 대전갈테니 한잔 크게 달리자 연락하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대전을 향했다.





옥천에서 대전까지의 길은 좀 위험했다

차들이 엄청 쌩쌩 달렸다


상대적으로 교통량이 적었던 그간의 여정과 달리, 광역시로 들어가는 국도의 교통량은 꽤 많았다.

씽씽 달리는 차들 옆에서 조마조마 아슬아슬 나는 대전에 도달했다.




옥천과 대전의 경계는 오르막이었다.

그리고 오르막이 끝나자 무지막지한 내리막이었다.


대구에서 내 가게를 대신 봐주던 서포터 K도 그날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서울에 갔다가 대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전에서 내려서 한잔 같이 달리자고 연락했다.








대전에 진입했지만 한참동안 그냥 내리막과 한적한 길만 나타났다

길은 진짜 엄청 좋았다

왕복 12차선은 되겠던데 길도 새거고 차도 없고

씽씽 내려왔다








판암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행크스 주연의 '캐치 미 이프 유 캔' 이란 영화가 있다

거기서 디카프리오가 사기쳐서 파일럿 행세 한 항공사 이름이 팬암이다







쌍청예식장


모탈컴뱃이란 비디오게임이 있다

거기서 끝판대장 이름이 샹청이다






약속장소인 대전역이 머지않았다






여기서 나는 우회전을 하며 그동안 동고동락한 4번국도와 이별한다.

우회전 뒤 직진하면 대전역이 나온다.






바로 이렇게.









나보다 더 고생한 내 스트라이다.
















대전역 옆의 식당에서 육개장을 먹었다

아침에 짜장면 먹은 뒤 첫 식사다

몸에 저장해둔 에너지가 많으니 끄떡없다 에라이


폰도 좀 충전하고, 올 일행들도 기다리고.







군대 후임이랑 서포터 K 만나서 일단 내 숙소부터 잡고.

숙소에 자전거 세워두고 씻고 옷갈아입고 술마시러 나왔다.


비로소 찾아오는 온몸의 격통.


발이 미친듯이 아프다.

별로 걷지않아 몰랐다. 딴데보다 발이 너무나 아프다. 부서질 것 같다.


환자처럼 비틀비틀대며 대전시내에서 술을 퍼먹었다.

폰을 두고 나온 관계로 사진은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1차는 그냥 일본식 술집? 안주로 연어 먹었다. 그저 그랬다.

2차는 횟집 갔다. 새우회 팔길래 새우회 시켰다. 새우회 엄청 맛있다.


그 횟집에서 옥천 피씨방에 이은 두번째 문화충격.






"사장님 새우회 새우 다 잡아서 까 주시죠?"


횟집에서 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당연히 알아서 해주겠지. 근데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


"그 많은걸 어찌 다 깐대유. 흔들어드릴테니 까서 드세유."

(너무 대놓고 충청도 말투로 적었는데, 비아냥이나 비하가 아니라 외부 사람들은 다 그냥 이렇게 들림을 이해해 주시길)




흔들어주다니?


락앤락 통에 새우를 가득 넣고 막 흔들면서 들고오고 있다.

새우를 기절시키는거다.

그리고 내 앞엔 락앤락 통과 가위 하나.


열심히 새우 목을 따서 껍질 벗겨 먹었다.

사실 맛있게 잘 먹어서 별 불만은 없었다.


눈앞에서 살육이 벌어지는 것에 치를 떨던 서포터 K만 제외하면.


새우회는 살 맛이 달다.

진짜 약간 달달함.


절반은 회로 먹고 절반은 소금구이로 먹었다.




경찰관을 하는 군대후임은 술이 들어가자 또 여자친구 사귀고싶다 외롭다 타령을 시작했다.

경찰관이라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다. 신분상 어디가서 경거망동도 못하고.

집에 갈때 됐다. 계속 여자얘기만 하는거 보니 술됐다.





(2일차 지옥의 100킬로 여정 끝)




나중에 또 수정하겠음. 









,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어


- 듀스 '우리는'






낯선 공간에서 깨어난 아침

혼란스럽다

온몸이 아프다


그렇지

나는 자전거를 타고 김천으로 왔다

그리고 술을 3차에 걸쳐 퍼먹고 아는 동생네 가게 와서 잤다



아...











숙취가 거의 없는 편이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쪼끔 있긴 있다 특히나 어제처럼 무지막지하게 운동을 한 뒤 또 무지막지하게 술을 들이부은 날은 당연히도.







오늘 내가 가야 할 예상 거리는 김천에서 영동, 옥천을 거쳐 대전까지 약 100킬로미터

한시간에 10킬로씩 간다 치면 10시간.


김천에서 영동 사이에는 구름도? 바람도? 아무튼 뭣도 쉬고 간다는 추풍령 고개가 있다.

구름도 바람도 쉬고 간다는데 나? 당연히 쉬고 가겠지.

어마어마한 오르막이 존재할거란 막연한 생각이 든다.


지도로 봐서 길은 알겠지만 오르막 내리막까지 지도로 하나하나 다 알아내기는 쉽지가 않다

아무튼 난. 오늘 추풍령을 넘어서 경상북도를 벗어나 충청도로 들어가는거다.








7시 40분이 좀 넘어서 일찌감치 출발했다 갈 길이 멀다







숙소에서 나서고 5분여만에 김천역 돌파

김천역에 개인적인 추억도 좀 있지만 추억팔이 하며 머무를 시간이 없다

사실 어제 김천에서 술퍼먹으며 추억세척 싹 끝냈음





김천역을 지나니 김천시장? 뭔 시장이 하나 나왔다.
전날 술도 꾸역꾸역 퍼넣은데다 아침 공복. 김천을 벗어나면 바로 시골길 예상.
그리고 김천 벗어나자마자 추풍령 고개를 타야하고.
에너지 보충을 해야한다. 


시원하게 돼지국밥 한그릇 말아먹고 출발하자

하고 시장을 둘러보았다
예전에 김천에서 돼지국밥을 굉장히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났기에
김천의 시장 뒤지다보면 돼지국밥 한두군데쯤 있겠지
하는데. 진짜 시장 어딘가에서 돼지국밥 국물의 꼬리꼬리한 냄새가 난다.
맡으면 좀 역할수도 있는데 나같은 마니아에겐 식욕에 불을 훅 당기는 그 냄새.
나는 개처럼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간다.

냄새가 가장 짙은 곳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아무것도 없다.

여기가 아닌가?
다른곳으로 이동하니 냄새가 옅어진다.
어?
이상하다.
다시 제자리로 이동하니 냄새가 가장 짙어졌다.
어?
아무것도 없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려다가.
나 왠지 이런 이상한 자존심 있다.
묻기 싫더라. 지는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찾아봐야지. 하다가 결국.








..............................






공복으로 난 추풍령을 향해 달려간다.....











식당가가 잔뜩 있는 김천 서부의 부곡동을 지나니 본격적으로 시골이 나타난다

좌우로 논밭이 있고.

김천 시내는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김천을 벗어나면 시골이 된다.



사실.

시골 진입은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다.


대구를 벗어나서 왜관까지, 또 왜관을 벗어나서 김천까지.

이 50킬로의 여정이 도시권이라고 하긴 좀 힘들어도, 논밭이 있고 막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이런 구역은 없었다.

산 사이로 난 국도를 따라가다 드문드문 마을이 나타나는거였지 평야을 지나고 이러진 않았으니까.


근데 김천을 벗어나자 처음으로 이윽고 탁트인 들판이 나타난다.

또한 여기서부턴 레알레알 초행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김천까지는 4번국도를 이용해서 자동차로 자주 왔다갔다 하던 곳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생전 처음 가 보는 길이다.






영남제일문


4번국도는 길 따라서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왜관에서 김천까지는 '칠곡대로'

김천에서 추풍령까지는 '영남대로'

추풍령에서 옥천까지는 '난계로' 

옥천에서 대전까지는 '옥천로'


지금 난 영남대로를 지나고 있으며, 영남대로의 한 복판에서 영남제일문을 만났다.

정말 이 곳을 지나면 이제 영남은 거의 끝난다.

이 문을 통과하여 조금만 더 가면 충청도가 나타나니까.

엄밀히 말하면 여기가 김천의 끝은 아니지만, 여기서 충북 영동군까지는 그냥 허허벌판 시골과 오르막고개가 전부다.







영남제일문의 앞에 써 있는 비문이다.

그래.

나에게 축복을.





윤은혜와 오만석이 나온 '포도밭 그 사나이' 라는 드라마가 충북 영동에서 촬영되었었다.

김천의 서북부, 그러니 영동과 접경한 쪽에서부터 서서히 국토는 포도에 뒤덮이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포도포도포도포도포도 타령은 영동 다음 도시인 옥천을 벗어나서야 끝난다.

그러니 김천 말 - 영동 - 옥천 초 여기까지가 포도의 나와바리.













쭉 서쪽으로 뻗어있던 길이 오른쪽으로 굽으며 북행으로 변한다

미리 인터넷 지도로 확인했을 때는 여기서부터 슬금슬금 오르막이 나타나며 추풍령에 진입한다

그리고 곧 충청도에 들어간다




4번국도 위를 지나는 KTX 레일

나는 서울까지 아직 2박 3일이 남았지만, 이 길을 지나는 KTX 는 1시간 뒤면 서울에 도착한다.










KTX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표지판

절망스러울 따름이다


저 멀리서 스물스물 오르막이 보인다.

로드뷰로 확인했을 때도 여기서부터 오르막이 대충 시작된다.







두둥

드디어 본격적으로 독이빨을 드러낸 추풍령 고개

자전거로 더 진행할 수 없었다

끌고 걷기 시작한다.


산고갯길을 따라 좌우 펜스에 중앙분리대까지 탁 박아둔 오지

대구를 나서서 처음으로 주변에 민가 하나 안보이는 쌩 오지로 들어간다

























얼마를 걸었을까

인터넷 지도로 확인해보니 이제 추풍령은 얼마 안남았다

오르막은 끝도 없다


근데 너무 지친다

차들은 쌩쌩 달리고

누군가가 나를 치어죽이고는 그냥 길 밖 풀숲에 유기해도 난 발견안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걱정증이 좀 있다 ㅋㅋㅋㅋㅋ


나는 길 바깥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자전거를 질질 끌고가며 속도도 안나고 지겹고

인터넷을 뒤지는데 비보가 전해졌다


로빈윌리엄스 사망. 자살로 추정됨.



불세출의 코미디언이었다.


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친구들은 '미세스 다웃파이어' 라는 코미디 영화를 알거다.

대충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혼하고 양육권까지 모두 넘겨준 아빠 (로빈 윌리엄스) 는 가족들이 너무 보고싶어서

할머니로 변장을 하고 전부인네 가족들의 가정부로 들어간다.

그 와중 생기는 각종 에피소드들이 영화의 내용이다.

물론 헐리웃 가족영화답게 전부인은 재혼하려 하고, 아빠와 아이들은 은근 방해를 한다.

페어런트 트랩과 비슷.




이 영화 이외에도

어른이 된 피터팬으로 등장하는 '후크'


무려 20세기 느와르의 시초이자 정점이자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인 '대부'의 감독 프란시스 코폴라가 만든 조로증을 소재로 한 영화인 '잭' 등을 추천한다. (대부와 전혀 다른 영화다. 놀라울 정도로. 민요와 테크노 정도의 차이)


Rest in peace.















드디어 경상북도를 벗어나고 충청도에 도달했다.





김천에서 출발한 지 2시간만에 충청도에 온거다.

어제 오후 1시 정도에 출발했으니 하루가 안되어 경상도를 벗어났다.












궁금증이 일었다.

추풍령이 있는 영동은 충청도.

내 등 뒤에 펼쳐진 김천은 경상도.


익히 우리는 경상도 말투와 충청도 말투가 다름을 잘 알고 있다.



영동과 김천 경계에는 마을이 각각 하나씩 있다.

두 마을의 거리는 불과 몇백미터.

그냥 한동네나 다름없다.


영동은 추풍령 마을.

김천은 광천 마을.



그렇다면 두 마을 사람들의 말투는 경상도 말투와 충청도 말투로 상이할까?




궁금했다.

내가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어볼 순 없어서 인터넷 찬스를 썼다.


추풍령 사람들 말투에 경상도색이 많이 묻어있댄다.



원래 충청북도 쪽이 충청남도 쪽보다는 사투리가 덜하다고 알고있다. 

충주를 위시한 경기도 접경 사람들 말투는 그냥 경기도 말투였다.

나중에 보니 추풍령 사람들은 경상도 말투를 쓸 수 밖에 없겠다 싶었던 게

추풍령이 영동의 인구밀집지역인 읍내와 어마무지하게 멀더라. 차라리 김천쪽이라고 보는게 낫겠드만.












추풍령 표지석?

사진 좀 찍었다.


덩치가 좋은 어떤 아저씨도 오토바이로 전국여행 중인가 이 앞에서 오토바이 세워놓고 사진 찍더라.

그 아저씨도 어딘가에 여행의 썰을 풀어놓겠지.


사진 한방 부탁하길래 찍어주었다.


여행중이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냥 대화 길어질까봐 치웠다.

낯선 사람하고 말 길게 하는것도 그닥 좋아하지도 않고.

타인에게 호기심을 지닌 오지라퍼로 보이고싶지도 않았고 ㅋㅋㅋㅋㅋㅋㅋ

성격 삐딱한게 여과없이 드러나는 여행 ㅋㅋㅋ






배도 고프고 해서 4번국도를 이탈하여 추풍령 마을로 들어갔다

밥이나 먹고 가던길 마저 가야지





그냥 그런 시골마을







김천에서 추풍령으로 들어오는 버스






추풍령에서 영동가는 버스







경상북도 소재 시내버스와 충청북도 소재 시내버스가 한 터미널을 사용하고 있다.


대구에서 250번 버스를 타면 경상북도 칠곡군까지 간다.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또 몇번몇번을 타면 구미까지 간다.

구미에서 또 김천 오는 버스를 탈 수 있다.

김천에서 또 뭐를 타면 추풍령까지 온다.

추풍령에서 버스를 타면 영동까지 간다.


시내버스로만 전국을 종단할 수 있다. 그런 컨셉의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고.

뭐. 난 자전거로 한다. (사실 버스여행이 시간 더 걸린다. 환승시간 텀이 극악이라)







추풍령 터미날










농협 창고 벽에서 비보잉을 하는 상모를 보았다












추풍령 역이다.

구름도 쉬고가고 바람도 자고가는 추풍령 역은 경부선에 위치한 역 중 가장 해발고도가 높다.

227미터.

한국에서 제일 높은 건 아니고 경부선에서 제일 높다.

한국 최고 높이의 역은 태백선의 추전역.


무려 855미터이다.











대구를 보니 반갑다

왜 대구패션일까











짜장면집에 가서 짜장면 하나 시켰다.

어디서 읽었는데 마라토너들은 마라톤 전날 짜장면을 먹는다던가.

탄수화물이 풍부하고 뭐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운동원이 되는 글리코겐이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일단 짜장면을 먹었다.


곱배기를 시켰는데. 양이 넘 많았다.

일부러 곱배기를 시켰는데 남길 순 없고.

들입다 들이붓는데 너무 배가 부르다.


중간에 몇번 쉬고 꾸역꾸역 먹고. 또 쉬고. 아 도저히 못먹겠다.

그래도 지금 먹으면 또 언제 뭘 먹을수 있을까.

아 그래도 못먹겠다 너무 많다.


남기고 나왔다.


웃긴게 다른 자전거 여행꾼들 블로그 읽으면 당 떨어질까봐 초코바를 수시로 먹고 비상식량을 목숨처럼 챙기던데

나는 아침에 한끼 먹으면 목적지 도착할 때까지 배가 고프지가 않더라.

그래서 아침에 한끼 먹고 도착해서 한끼 먹고. 늘 이렇게 여행했다.


몸에 돼지처럼 곳곳에 기름이 끼어있으니 그런거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인간 낙타다

인간 낙타



짜장면 먹고 길을 나선다

아직 갈길은 80킬로는 남았겠다

아 미치겠다


나선 시간은 오전 10시 40분 즈음.


후루루루룰

추풍령 오르막 적금 만기로 내리막 연금을 받아먹기 시작하는 중인데

반대편 차선에 자전거 여행꾼들이 보인다.

자전거 여행꾼을 마주친 적은 처음이다.

저들은 하행 중이네. 지금 오르막의 막바지를 오르고 있다.

추풍령에서 오르막 꼭대기를 찍고 김천까지 꿀내리막을 내려가겠지. 힘내쇼 얼마 안남았수다.


난 스르르르르르 내려가다 만다.


김천에서 추풍령 방면은 급오르막인데

추풍령에서부터 영동까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다.


왜관에서 김천 때랑 마찬가지다.

오르막 적금 부을 땐 개고생인데 내리막 연금 받아먹을땐 찔끔찔끔이다

아 이거 일시불로 훅 좀 땡겨주지


물한모금 하려고 자전거를 세웠다.

근데 어?


자전거 후레시가 없다.

어디서 빠졌지?


짜장면 먹을 때 자전거를 반점 밖에 세워뒀는데

그때 누가 빼갔나?

언제부터 없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하는건 아니다.

오천원도 안줬지싶다.

근데 야간라이딩이 불가능해졌다.

오천원짜리 싸구려 후레시로 야간라이딩을 할 생각따위도 없었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제 야간라이딩은, - '불가피하면 할수도 있겠다' 가 아니라 '절대 하면 안된다' - 가 되었다


자 가자

영동으로










김천과 영동 사이에는 자전거 여행꾼들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 두 스팟이 있다.


그 중 하나인 애교리다.

자전거 타고 오가는 사람들 블로그엔 무조건 있다.


애교가 가장 많은 마을이란 뻔한 드립과 함께.









Feel so good.










허허허허










황간으로 들어왔다

무궁화호 타고 경부선 오가는 사람들은 몇번 들어봤을꺼다.


황간.



서울대전대구부산


요런 대도시들 말고

그냥 좀 애매하게 듣도보도 못한 도시인데 꼭 서는 역이 있다

오묘한 존재감


나의 경우에는 황간역이나 약목역이 좀 그런 느낌이다

황간역의 경우는 간이역이 아니라 보통역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영동 군내와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렇다고 하네.



암튼 그래서 황간은 뭔가 친숙하다.



사진으로는 다 안담기는데 당연히.

스마트폰의 광각 카메라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는데 있어서는 눈보다 열등하니까.


저 산이 아주 멋드러졌다.


인터넷 검색해보니 산 이름이 주행봉?


뭐 그렇다네. 아주 멋졌다. 크고 아름다웠다.









낯도 좀 씻고 화장실도 사용하고

그리고 친숙한 황간역 한번 보고도 싶고

그래서 황간역에 갔다


뭔가 아주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왜일까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는 역이었다



방금 글쓰며 알아보니

황간역장님이 철도동호회 회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황간역을 꾸미고 가꾸는 데 아주 정성이 많으시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온라인에 올리기도 하고

주변 인구도 여객수요도 적은 역인데도 외부에서 음악회 같은 행사들도 자주 초청하시고

아주 직업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분 같다


본받아야지



그래서 40일 전에 느낀 그 역에서의 따뜻했던 기분이

아직도 느껴지는가보다.










김천과 영동 사이에 존재하는 두 포토스팟 중 하나인 노근리가 가까워온다

노근리가 가까워오는 것은 영동 군내와도 가까워진다는 것







포스팅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다

둘로 나눠야지




노근리가 머지않았다.................................







(2일차 여행의 전반부)


,

컴퓨터를 새로 사고 사진을 정리하고 이래저래 하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도전이 끝난지 2주가 넘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천천히 하나하나 기억해낸다

나는 기억력이 좋으니까














2014년 7월말








일하다보니 문득 엄청 답답했다

직장인도 아니고 매일 작은 가게에서 똑같은 풍경을 보며 똑같은 일만 반복하는 삶에 좀 지쳤다

사실 잔소리 심한 직장상사를 모시고 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사가 쪼들리게 파리만 날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럭저럭 재미없게 편한 삶을 살면서 인생이 너무 정체되었다고 하려나

아무튼 배부른 고민으로 허덕일 즈음이었다


알바한테 맡기고 훌쩍 떠날까 했지만

이제 갓 스물 넘은 알바 혼자서 가게를 보기는 좀 버겁고..


이때

지쳐있는 나를 구원해주고자 나 대신 일주일간 가게 일을 도와주겠다는 분이 나타났고

나는 그분께 가게일을 가르쳐드리며 여행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일단 루트를 정해보기로 했다

두가지 루트를 생각할 수 있었다




1. 주요도시를 거쳐가는 국도루트



대구 - 왜관 - 김천 - 추풍령 - 영동 - 옥천 - 대전 - 세종 - 천안 - 평택 - 수원 - 서울


경부선 인근의 주요도시를 경유하는 4번국도와 1번국도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최소 20킬로마다 도시나 읍내 하나씩은 나타나는 루트이다

일몰이나 펑크, 우천, 부상 등의 최악의 경우에도 최소 3~4시간만 걸어가면 숙박업소나 가게가 나온다

노숙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가 다니는 국도변으로 자전거를 몰아야 하고, 중간중간 오르막 내리막이 존재한다

넷상에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자전거 국토종단기가 이 루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있다






2. 4대강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는 루트



대구 - 구미 - 상주 - 문경 - 충주 - 여주 - 서울 


자전거로 갈수있는 길이다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사전정보가 1번항에 비해 극히 적다

강변에 형성된 자전거 도로이므로 고저차와 자동차의 위험은 적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도시 경유하는 1번 루트에 비해 소도시가 드문드문 있는 농촌권이다

다시말해 각종 사고로 일정이 어그러지면 노숙의 여지가 다분하다




1번 루트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웅대한 계획을 주변에 선언했다









저 날이 금요일이었다.

3일 뒤인그 다음주 월요일에 출발을 하려고 했다

급 일정이 잡혀 후다닥 준비해서 후다닥 가는거다보니 일단 질러나 보고 힘들면 돌아오자는 생각이었다

왜냐

나는 20대도 아니고 평소에 자전거를 열심히 타는 동호인도 아니고

별다르게 준비해 둔 것도 없었으니까


뭐 일단 출발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힘들면 바로 돌아오자...


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날 뉴스




태풍....



아무리 그래도 그 먼 거리를 비를 맞으며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과 엉켜서 갈 수는 없었다

목숨은 하나다







당장 떠나버리고 싶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1주일간 준비를 철저히 해서 성공률을 최대한 높인 뒤에 떠나자고 진로를 수정했다


준비랄것까지야 넘 거창한 소리고

그냥 좀 편하게 좀 덜 심심하게 좀 더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아이템들을 더 갖추는 것이었다









일단 금메달을 샀다

서울에 도착하면 목에 걸 생각이었다 ㅋㅋㅋ (다이소 2000원)



준비물

아이패드 거치대, 대용량 보조배터리, 설탕, 방풍자켓, 헬멧, 장갑, 16인치 스페어타이어, 펑크패치

수건, 잘마르는 옷, 속옷, 양말, 선글라스, 아쿠아슈즈, 냉장고바지팔토시, 안면마스크, 선크림, 물통, 방수비닐팩

물티슈, 휴지, 백밀러, 후레시, 발광조끼



검은색 원래 갖고있던거

빨간색 새로 구입

회색 결국 안샀거나 안가져간 것들



준비물도 다 갖췄다



가면서 지도를 용이하게 확인하고 또 음악도 들으며 갈 수 있도록

아이패드 거치대를 샀다

아이패드 거치대는 잘 판매도 안하거니와 그 거대한 사이즈로 인해 일반 스마트폰 거치대보다 훨 비쌌다


하지만 비싼 값을 하진 못했다

나중에 여행기 중에 한번 더 얘기하겠지만, 여행 중 내 아이패드는 아주 작살이 났다

여행하며 든 지출에 육박하는 지출이 아이패드 단 하나의 수리비로 나갈 예정이다 (아직도 안고침 ㅠㅠㅠㅠ)



펑크 패치와 스페어 타이어도 준비했는데

펑크를 직접 때워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혹시 몰라 펑크 때우는 전 과정을 모두 아이패드에 캡쳐해 두었다

때우는 것보다 더 자신없는건 타이어 튜브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것이었는데

미리 한번 해 볼까 하다가 귀찮아서 관뒀다

펑크가 안나길 기도해야지






여행 루트도 새롭게 손봐야 했다


나에게 허락된 시간, 다시말해 지인이 대타를 해주기로 한 기간과 가게휴무일을 합친 기간은

8월 11일부터 8월 17일까지 6박 7일이란 긴 시간

생각보다 시간이 길게 허락되었는데 원래 생각한 루트로는 3박 4일이 끝이기 때문이다









일단 4번국도 하나말고 다른 루트를 생각할 수 없는 농촌권인 대구 - 대전 구간의 루트는 그대로 두고

어딜가도 몇킬로마다 사람이 득시글거리는 수도권 루트를 좀 손봤다

발길닿는대로 가도 크게 사고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1. 평택 - 대부도 - 오이도 -인천(1박) - 서울

2. 평택 - 대부도 - 오이도(1박) - 서울

3. 평택 - 수원 - 인천(1박) - 서울

4. 평택 - 수원 - 안양 - 서울



원래 수도권은 4번 루트로 진행할 생각이었지만

네개의 루트를 만들어 놓고 남은시간 봐 가며 넷 중에 하나를 골라서 하기로 했다











준비는 철저하게 해야한다

나는 조금의 빗나감도 없이 완벽히 계획한대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해 두었다


인터넷 지도를 구간별로 인쇄해서 가는 루트에 위치한 각 도시별 거리와 예상 소요시간, 

자전거 수리점, 숙박업소,  그리고 지도에는 크게 안나와있는 농촌마을까지 모두 표시해 두었고

국도변의 시골마을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고 각 마을 입구와 거리를 로드뷰를 통해 

미리 사전방문(?)까지 꼼꼼히 하여 길의 모양을 눈에 익도록 수없이 봤다


이래야 안심이 되었다

왜냐 나는 30대니까








그리고 시간은 흘러흘러

그날이 왔다








(2부에 계속)


,

2014년 5월 말.

기괴한 도전 채식편을 마친 지 2달이 훨씬 넘었다

그간 채식도전에 성공해서 스스로 획득한 아이템인 롱보드를 열심히 타며 시간을 보냈다

아주 잘탄다.

몇번 사람많은데서 자빠져서 개망신을 당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일 뿐. 후후후


다음 도전에 대한 생각은 있었으나

어떤 도전을 해야 할 지 도저히 감이 서지 않았다.

왜냐. 쉬운 도전은 의미가 없고, 어려운 도전은 힘이 드니까. (다시말해 쉬우면서 의미있는 도전을 찾고 있었다)


애초에 이 블로그를 만들었을 땐 별 의미나 명분 없는 잡스런 도전을 하려 하였으나

채식 도전에서 쓸데없이 필요이상으로 의미부여를 해버린 게 컸다.

다음 도전도 뭔가 좀 제대로 된 도전을 해야한다.....



삶에 치대이며 도전에 대한 고민이 사라져갈 즈음.

여름휴가 기간이 도래하였다

나야 장사를 하는 입장이다보니 휴가따위 없다. 그리고 업종 특성상 지금이 가장 성수기이기도 하고.


그러나. 두둥!

나의 기괴한 도전 서포터를 자처하는 나의 최측근 K 요원이

장기간 휴가를 맞이하여 나랑 놀 겸, 일 배울 겸, 가게일을 도우러 와 주었고

그가 가게를 믿고 맡길만큼 나의 최측근이었기에, 나는 넌지시 '일주일만 가게를 봐 주세요...' 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리고 K 요원은 이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나에게 몇년만에 여름휴가가 생긴 것이다!


내가 휴가기간동안 하고 싶었던 것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냐만, 나는 대학 졸업 즈음하여 배낭여행에 맛을 들였고

그 맛있게 맛을 본 배낭여행을 몇번도 해보지 못하고 졸업을 하여 사회인이 되고

그 뒤로 몇년간 시간이 있을땐 돈이 없고, 돈이 있을땐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은 언제나 없던 삶을 살아오며

배낭여행같은 여행은 꿈도 못꾸고,

하루짜리 당일치기 또는 끽 해야 일박이일 정도의 바람쐬러 다녀오기 정도로만 만족해야 했었다


떠나자. 배낭메고. 일주일간.


그렇지만 혼자서 배낭여행을 어딜 가야하나.

가봤자 혼자 뻘쭘하게 돌아다니다가 하루이틀 지나면 흥미뚝 돈뚝 체력뚝 모두 뚝뚝뚝 된 뒤 쓸쓸히 돌아오겠지

그리하여 나는 '목적지' 가 아닌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 에 중점을 둔 여행을 하기로 했다.

바로 '국토 종단'




끼워맞춘다고 이렇게 전, 후를 바꿔서 끼워맞췄는데.


사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땅끝마을에서 휴전선까지 내 발로 걸어 도착하는 국토대장정을 꿈꿔왔었다

티비에서 연예인들이 국토대장정을 하는 프로그램을 보거나, 박카스 국토대장정을 보면서 나도 꼭 하고싶었지만

돈이 없거나 기회가 안오거나 귀찮거나 등등의 잡스런 이유로 늘 '하고싶다' 만 외쳤다.


여행가 한비야씨의 책에도, 외국 곳곳을 돌아다니던 그녀의 여행 종착지는 한국의 국토종단이었다.

오래전 읽은 책이지만 그녀는, (어렴풋 기억하기에)

'시간이 없음을 핑계대지 말라. 여행을 꼭 가고싶으면 코스와 기간을 몇차례에 나눠서도 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다시말해 주말마다 이번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음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이런식으로도 국토종단은 가능하다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나는 그의 그 말에 감명을 받았으나.

그 또한 왔다갔다 차비나, 몇주간의 반복끝에 질릴 것이 뻔하므로 아 그럴듯하지만 나와는 맞지않겠구나

하고 있었다.


핑계가 많은데.

아무튼 이런저런 비겁한 핑계로 하고싶은 것을 하고싶다 말만 하고 하지 않았기에

이번에 시간이 크게 난 김에, 그리고 체력적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걷는 이 30대 나이에 더 늙고 지치기 전에

이 과업을 이루어내고 싶었다.


사실 그것을 하고싶었기에 K 요원에게 일주일간 가게를 부탁한 것이었고

그의 흔쾌한 허락으로 여행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로는 국토종단은 턱도 없다.

시속 4킬로의 도보로 하루 10시간을 걸어도 40킬로. (10시간을 쉬지않고 걸을리도 만무하고)

내가 사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애초부터 땅끝부터 할 생각은 없었다) 루트별로 대략 350~400킬로

10일간 꼬박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계처럼 걸어야 가능하다.

내가 아는 도보 국토종단의 기간은 최소 20일 정도 잡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애초부터 기획한 국토종단 (대구 - 서울이지만 편의상 국토종단이라 하겠다) 수단은 바로.


자전거였다.





내가 소유한 자전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 이라는 별명을 가진, 스트라이다 5.1 버전.



 

(딱 요 모델 요 색깔이다)



기어는 없고, 바퀴는 16인치.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미니벨로이다.


속도를 내는 것보다는 교통수단과 연계하여 환승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고

바퀴가 작고 기어가 없기 때문에, 평균속도는 시속 10킬로를 살짝 상회하는 어마어마하게 느린 속도를 자랑한

(보통의 유사엠티비로 20킬로 내외, 사이클처럼 생긴 로드바이크로는 30킬로 이상을 내는 데 비하면 굼벵이다)

물론 사람따라 다르고, 당연한 얘기지만 쎄게 밟으면 빨리도 나간다. 하지만 힘이 들기 때문에 속도 유지는 힘들다


보통 도보의 2배에서 3배, 로드바이크의 절반 이하의 속도.

공기저항을 피해 몸을 구부리는 로드바이크에 비해,

빈폴마크의 아저씨처럼 몸을 꼿꼿이 세워서 주변을 조망하며 타는 피팅자세.


모든 면에서 도보와 로드바이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자전거라 볼 수 있다.


거기다 자전거는 도보에 비해

같은 거리를 이동할 때의 에너지 소모는 물론이거니와, 같은 시간동안 탑승하여도 에너지 소모가 적은 편이다

다시말해 '평균속도를 유지하는 선에서 10시간 걷기보다는 10시간 자전거 타는 것이 쉽다' 이것이다.

같은 시간동안 두세배 이상의 거리를 더 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전거 여행의 이유와 자전거 소개는 이쯤으로 하고.

이번 도전을 정리해본다


- 도전기간 :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 2014년 8월 17일 일요일 (최대 7일, 권장종료기간 8월 14일)

- 도전과제 : 자전거로 대구에서 서울까지 가자

- 도전목적 : 어린시절부터 꿈꿔왔던 국토대장정의 숙원을 이루자



* 세부사항


1) 넉넉잡아 일주일의 기간이지만, 계획은 월화수목 4일을 기본으로 한다.


2) 나이가 있으니 안전하게 탄다. 속도보단 안전이 우선이다.


3) 야간시(7시 이후), 우천시는 절대 타지 않는다. 무모함은 자살행위다.


4) 기상악화나 컨디션 악화시에는 주저없이 도전을 중지하고 귀환한다.


5) 유사시를 대비하여 최대한 도시권 경유를 위주로 여행루트를 정한다.




보면 대부분 알겠지만, 안전에 최대한 주안점을 두었다.

왜냐 나는 젊어서 피가 펄펄 끓는 10대 20대가 아니니까 안전이 우선이다.


여행의 준비과정에서도 지도마다 마을과 자전거 수리점 등의 거점을 표시해서 우왕좌왕 하는 일이 없도록 준비했다

여행 준비과정 및 1일차 도전은 다음 글에서 풀어보겠다.


도전 중 실시간으로 블로그를 쓰던 이전 도전과는 달리

이번엔 보시다시피 도전을 종료하고 쓰는 글이다. 성공 실패의 여부는 미리 말 않겠다




두번째 기괴한 도전 프롤로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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